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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선교정신 정착한 복음의 항구

알렌·아펜젤러·언더우드 선교사 첫 발 내딛은 선교역사 흔적 곳곳에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우뚝’…내리교회·영화학당서 향취 느끼다


   
  ▲ 이곳에서 복음의 물결이 온 나라와 땅끝까지 파도치기를 기원하며 건립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서울과 전남, 영남의 기독교 문화유적을 둘러 본 우리는 이제 한국 기독교 선교의 출발지 인천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인천은 개화문명을 꽃피운 곳이자 알렌,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사가 첫 발을 내딛은 한국 선교의 시작점이다. 그렇기에 인천에는 선교 초기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숨 쉬고 있고 초기교회의 숭고한 정신이 새겨져 있다.

120여 년 전 이역만리 타국에서 복음을 전하러 온 역사의 숨결을 찾기 위해 인천행 전철 1호선에 몸을 싣는다. 동인천에서 도원, 주안을 거쳐 부평까지 오랜 전철역 주변에 인천의 기독교 문화유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식 지하철과 달리 여전히 덜컹거리는 인천행 전철은 옛 기억을 더듬는 답사의 이동수단으로 안성맞춤이다. 초기 기독교의 옛터를 찾는 설렘과 조바심을 한껏 끌어올리는 동안 어느새 인천 여정의 출발지 동인천역에 다다랐다.


동인천

동인천역 지상출구로 나오면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내리교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내리교회는 잠시 접어두고 선교사들이 첫 발을 내딛은 현장으로 향한다. 42번 국도변을 내려가 차이나타운 맞은편, 파라다이스호텔 아래쪽으로 가면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을 만난다.

기념탑 터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곳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매립되어 육지가 됐지만 당시에는 배가 닿을 수 있는 제물포항이었다. 이 곳에 복음을 전하러 입국한 선교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1986년 3월 30일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을 세웠다.

50평 면적에 세워진 기념탑의 총 높이는 17m로 3인의 청동상, 3개의 탑신, 6면의 부조 및 원형 석조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3인의 청동상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이며 탑신 전면의 양쪽 부조물은 부활의 환희와 복음이 이 땅이 충만케 된 것을 의미한다.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화단에 만발한 무궁화가 고개를 돌리는 이곳은 제법 한적한 장소다. 그래서 방치돼 있을 것이라 우려 했지만 기념탑보존회에서 사무실을 두고 관리하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3년 전 기념탑보존회가 보수·청결작업을 거치면서 방문객이 매년 늘고 있다. “오늘 사망의 빗장을 부스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간구하오니 어두움 속에서 억압을 받고 있는 이 한국 백성에게 밝은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라고 기록되어 있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기도문에 담긴 은혜를 한아름 안기 위해서 말이다.

이제 동인천역에서 지나친 내리교회로 되돌아 가자.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에서 언덕 위에 서 있는 내리교회로 오르는 길은 다소 거리가 있지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에 걷기로 한다. 차이나타운, 한중문화원, 인천아트플랫폼, 근대건축전시관 등이 이어져 있는 인천개항누리길에서 개항문화의 향기를 몸소 체험하고 만두와 닭강정으로 유명한 신포시장을 지나면 늠름한 자태로 서 있는 내리교회가 보인다.

내리교회는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한국 기독교 선교의 발상지다. 예배당 입구에서 내리교회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아펜젤러 선교사, 존슨 선교사, 김기범 목사의 흉상이 반기지만 현재의 예배당은 1985년에 봉헌된 100주년 기념예배당으로 역사적 유산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히 예배당 2층 복도를 빼곡히 채운 60여장의 1890년부터 내려온 사진과 3층 조그마한 역사관에 자리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성경책, 1923년에 제작된 내리교회역사책, 역대 담임목사의 사진이 지나온 세월의 향을 살며시 뿜어낸다. 특히 화단에는 기념비와 1901년 이래로 울렸던 교회 종이 보존되어 있어 신앙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회상할 수 있다.

현재 내리교회는 후문 바로 옆 부지에 1901년 당시 제물포웨슬리예배당을 복원중이며 역사박물관 성격의 아펜젤러 비전센터도 건립하고 있다. 내년 5월에 완성된다고 하니 새롭게 만날 기독교문화유적에 기대감을 품고 한국 선교의 모교회를 떠날 수 있다.

내리교회 후문에서 20m 오르면 인천 기독교문화유산의 보석 내동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1890년 고요산 주교 등 6명의 선교사가 건축한 내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성공회교회다. 원래 인성여고 자리에 터를 잡았으나 한국전쟁 당시 피폭된 후 1954년 현재의 성당 건물을 건립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내동성당은 한국의 전통양식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조화로운 건축물이다. 외벽은 중세 바실리카 양식의 화강암을 쌓은 석조지만 지붕은 한국의 전통적인 처마양식을 더했다. 성당 내부는 12개의 십자가 모양의 기둥이 건물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는 12사도를 상징한다. 초기 유산을 그대로 보존하는 성공회교회답게 고혹적인 미가 물씬 풍기는 내동성당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시도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①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성공회 내동성당 내부 모습.②국제성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1459년 제작된 구텐베르크 성경 겉 표지.③역대 담임목사의 사진과 선교 초기의 유물을 모아 놓은 내리교회 역사전시관.④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신교육의 효시를 열었던 영화초등학교 본관동.⑤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 전경. 건물 입구 문화재 팻말이 귀중한 문화유적이라고 말해주지만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다.  
도원

동인천에서 한국 초기교회의 향취를 느낀 우리는 이제 도원역 인근에 영화초등학교와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으로 향한다.

도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우측방향으로 솟아 있는 창영교회 십자가를 쫓다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기관 영화초등학교와 마주한다.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오랜 역사의 기운을 지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11년에 지은 영화초등학교 본관동으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39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외부공사중인 본관동의 1층은 아이들의 책방으로 운영 중이지만 2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과 근대식 창틀에 옛 교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존스 부인이 설립한 영화학당은 서울의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중등교육기관으로 발전한 것과 달리 초등교육기관으로 자리를 잡아 한국 초등교육의 효시가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박사 김활란 여사, 유아교육의 선구자 서은숙 박사,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 영화배우 황정순 씨가 이곳을 거친 선배들이다.

영화초등학교를 나와 인천세무소 방향으로 20m 오르면 명작 ‘빨강머리 앤’에서 나올 법한 서양식 벽돌집이 한 채 서있다. 미국 감리교회가 파견한 여자선교사들이 합숙소로 사용했던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이다.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18호로 현재 창영교회가 관리하고 있지만 정확한 건축연대를 알 수 없는 것이 흠. 지붕은 함석을 덮은 삼각모양이고 벽체는 붉은 벽돌로 쌓았다. 내부는 목조로 되어 있다고 하나 잠겨진 내부를 둘러 볼 수 없어 안타까움이 더한다. 다만 정원이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과 고목이 복지관과 어우러지며 풍겨내는 환상의 조합이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주안·부평

앞서 동인천과 도원에서 인천의 선교 초기 기독교유적을 만났다면 주안과 부평에는 이를 기념하는 기독교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주안감리교회의 국제성서박물관과 순복음부평교회가 관리하는 한국선교역사기념관이 바로 그것.

1995년 설립된 국제성서박물관은 약 1만 5000권의 각종 성경들과 약 5000점의 유물이 소장하고 있다. 특히 전임 관장 한경수 감독이 40년 동안 수집한 성경 중에는 1459년 제작된 구텐베르크 성경 영인본과 ‘권위의 성경’이라고 불리는 ‘킹 제임스 성경’을 비롯해 외국의 시대별 성경과 국내의 시대별 성경, 프랑스, 폴란드, 인도, 태국 심지어 사모아와 체로키인디언의 성경까지 구비하고 있어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한국선교역사기념관은 기독교 유물보다는 스토리 중심의 박물관이다. 1층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가 전개되는 성서역사관, 2층은 기독교 전래부터 해방 전까지의 한국 선교와 순교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한국기독교관Ⅰ, 3층은 한국전쟁이후 한국기독교의 부흥과 성장을 그린 한국기독교관Ⅱ로 구성되어 한국 교회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재현하고 앞으로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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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13 16:37

    ◇ 인천 내리교회 ◇




    * 인천내리교회는 1885년 4월 5일 우리나라를 처음 찾은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한국 감리교의 모(母)교회로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1885년 7월 19일 서울로 올라가기까지 제물포에서 눈물의 제단을 쌓으면서 시작된 교회이다.


    * 초창기 교회 성장으로 1890년 노병일씨가 6칸의 교회당을 한국 최초로 자력으로 건축하면서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였다. 1894년에는 한국 최초의 자비교회당을 건축한다. 또한 한국 최초의 자비 개척교회(담방리교회 현 만수교회)를 설립한다. 인천내리교회는 한국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당, 한국 최초의 엡웻기독청년회, 한국 감리교 최초의 목사 김기범 목사 등의 자랑스러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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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펜젤러 선교사, 김기범 목사, 존스 선교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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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펜젤러 초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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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가렛 존스 부인

      (내리교회 2대 담임목사인 존스 선교사의 부인)

     

    - 1892년 3. 12일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인 영화학교 설립

    - 1893년 한국최초의 여선교회 조직

      (보호여회: 존스부인과 백헬렌 전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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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0년대 초 존스, 케이블 목사와 내리 임원들

     

     * 1895년 한국 최초의 자비 개척교회 설립

       답방리교회 현 만수교회를 10원으로 개척

     

    * 1899년 12월 12일 한국 최초의 신학회 조직 개강

    “감리교신학대학 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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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리교회 초대 교인인 김기범 목사 안수 받음

      (1901년 5월 4일)

     - 한국 감리교 최초의 목사 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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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년 11월 한국 최초의 하와이 이민선 제1호에 내리교인 50명이 이민을 가다.

    * 1902년 12월 한국 최초의 해외선교사 홍승화 전도사를 하와이로 파송

     

    * 겔릭호 사진(1903.1.2- 1.13)

     (일본 나가사키에서 이민 102명을 싣고 하와이에 도착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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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겔릭호를 탄 안재창(김인수 원로 장로의 외조부)의 하와이 이민 여권(1903년)

     

    * 한국 최초의 해외 개척교회 설립

     “현 호노루루 미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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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와이 한인교회와 우남 이승만 박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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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식년에 하와이를 방문한 존스 부부(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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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와이 초기 사역자들(1907년)

    - 뒷줄 좌에서 두 번째가 첫 이민 인솔자인 김이제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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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각동(현 창영동)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여자 예배당(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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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두성(영화남학교 교장) 한글 점자 창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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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3년 10월 30일 창립 100주년 기념교회당 기공예배

    * 1987년 5월 24일 창립 100주년 기념교회당 봉헌예배

     




    * 위    치: 인천광역시 중구 내동 29번지

    * 전    화: 032) 762-7771

    * 홈페이지: www.na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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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13 16:39

    ◇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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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 부부와 언더우드 목사가 진리의 큰 빛,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이곳에 상륙하였다. 그로부터 100년, 한국 개신교회는 신도 1천만을 헤아리는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고난 속의 민족에게 구원의 안식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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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펜젤러의 기도문

    “오늘 사망의 빗장을 부스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간구하오니 어두움 속에서 억압을 받고 있는 이 한국 백성에게 밝은 빛과 자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1885년 부활 주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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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개의 탑신은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하며 하늘을 향하여 한 점에서 만나는 모양은 한국교회가 하나로 뭉쳐서 하나님께로 승화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온 누리에 퍼져 나갈 것을 바라는 한국 기독인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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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 전택부 장로

     

    * 평생을 YMCA운동에 헌신하신 전택부 선생

     

     YMCA 영원한 청년 오리 전택부 선생님께서 2008년 10월 21일 새벽 노환으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93세를 일기로 소천하였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믿는 듯 믿지 않는 듯 하라.”는 전택부 선생의 좌우명과도 같은 말씀이 지금 우리의 마음을 울리게 한다.


    * 위치: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1가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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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13 16:43

    ◇ 인천 영화초등학교 ◇



    * 1892년 인천 내리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죤스 목사가 부임하였다. 부인 마가렛 존스 여사에 의해 1892년 4월 30일 최초의 근대적 초등교육 기관 영화학당이 설립되었다.


    * 영화초등학교는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1892년 4월 미국 선교사 존스에 의해 영화학당으로 설립되었다. 한문으로 영화의 영(永)은 ‘영생’을 의미하며, 화(化)는 ‘교화’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영생의 말씀으로 많은 인재들을 교화시킨다는 염원에서 이름을 영화로 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그 시작부터 기독교 정신으로 영재를 길러내기 위하여 세워진 미션 스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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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가렛 존스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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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창기 영화초등학교 교사 사진

     

     

     * 존스목사 부부는 1892년 1월30일에 제물포교회(내리교회)의 담임목사로 파송되어 17년간 교육과 전도사역에 헌신을 하였다. 특히 존스목사의 내리교회는 강화, 교동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하였는데, 강화의 교산교회, 홍의교회, 잠두교회(강화중앙교회)그리고 교동교회 등이 세워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남편을 따라 온 존스 부인은 교육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이곳의 여성의 현실을 보고 학당을 세워 신교육을 시키기로 결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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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의 영화초등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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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0년대

    최초의 학생과 교직원(좌: 한 명의 학생,  중앙: 교장, 우: 초대교사 최헬렌)

     

    * 설립 초기 학생을 모집하였으나, 내리교회의 강재형 전도사의 딸만이 등록을 하여 1892년 4월에 한 명으로 교육을 시작한 것이 영화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 1902년 미국인 카루렌씨가 1천 달러를 학교건축기금으로 희사 하면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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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 5. 10 인천 내리예배당으로 신축 이전

    - 1903. 10. 12 인천 내동에 교사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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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년대

    영화 여학당 근대식 교사로 당시 제물포에 단 하나의 벽돌집이었다.

     

     

    * 1912년 사립 영화학교 인가를 받아 산수, 영어, 성경, 지구약론, 바느질 등 여러 과목을 교육하였다. - 1917. 3. 28 영화유치원 부설 / - 1919. 3. 30 창영동에 교사 신축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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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년에 건축된 학교 - 영화초등학교 본관동

     

     1910년 3월에 준공된 이 건물의 내부는 성서연구와 기독교 교육을 목적으로 교회 내에 설치하는 전형적인 주일학교 형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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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년대

     영화여자보통학교 제3회(1926. 3. 22) 졸업생 및 교직원

    - 1922. 2. 2 신교육으로 수업연한 6년으로 변경

    - 1922. 9. 13 영화여자보통학교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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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1년 영화여자 초등학교, 1996년 영화초등학교로 발전하였다.

    * 영화초등학교는 민족운동가 하상훈,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운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 유아교육의 개척자 서은숙 박사, 전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 탤런트 황정순 여사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 존스 여사의 학교 설립정신

     1. 하나님을 믿고 사람을 사랑하자.

     2.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자.

     3. 이웃과 나라에 봉사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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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활란 박사

    * 김활란(1899-1970) ; 이화 여성교육의 선구자

      인천에서 출생하여 7세때 세례를 받고 ‘헬렌’이란 세례명을 얻었다. 인천 영화여학교와 서울 이화학당의 보통과, 고등과를 거쳐 1918년 대학부를 졸업하고 이화학당 교사로 봉직하면서 ‘이화 7인 전도대’를 조직, 전국을 순회하며 복음전도와 민족 계몽운동을 실시했고 1922년 김필례, 유각경 등과 함께 여자기독교청년회(YWCA)를 조직했다.

     

     * 그 후 미국에 유학, 웨슬리언대학을 거쳐 콜롬비아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25년 돌아와 모교인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교수가 된 후 학장과 총장, 이사장을 역임하며 이화를 세계 명문대학으로 육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경직, 홍현설 목사와 함께 전국복음화운동을 만들어 복음전도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는데 “죽으면 장송곡 대신 환희의 송가를 불러 달라.”는 유언에 따라 장례식 때 베토벤의 환희 교향곡을 연주했다.

     

     * 일제 강점기 그녀의 친일 행적으로 인하여 김활란 박사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활란 박사는 이 나라의 여성교육에 지대한 공이 있다. 그러나 친일로 인하여 역사적 질타를 받는 모습이 여러모로 참으로 안타깝다.

     



    * 위    치: 인천광역시 동구 우각로 44(창영동 36)

    * 전    화: 032) 764 - 5131

    * 홈페이지: http://www.younghwa.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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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13 16:46

    ◇ 인천 국제성서박물관 ◇




    * 1995년 주안감리교회 내에 400평 규모의 국제성서박물관이 설립되었다.


    * 국제성서박물관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동 지역과 유럽, 북미지역, 아시아와 아프리카 권에 있는 희귀한 성경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 박물관의 성경들은 말씀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려준다. 이것이 바로 국제성서박물관의 설립 목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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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장 한경수 목사

     

    * 박물관장 한경수 원로목사가 40여 년 동안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 82개국의 고서점을 뒤져 수집한 1만여 권의 성서와 성서수집가인 미국 웨이크 필드 박사가 180여 개국을 여행하며 모은 5000여점(성경 1000권 포함)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 837개 언어로 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성서 1만7천여 권이 모여 있으며 미국 최대의 성서박물관인 아칸소주 <율레카 박물관>보다 5배의 규모로 세계 최대 성서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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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성서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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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성경은 대략 주전 10세기경 나온 것들이다. 여기에 있는 것은 사해 사본 복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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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라 문화권 안의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성경을 헬라어로 읽기를 원하던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다. 알렉산드아의 도서관 총무 팔레온의 데메리우스는 폴레미 2세 필라델피우스 왕(285-247 B.C)에게 왕궁 도서관에 모세오경을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헬라어 번역된 성경이 칠십인역이다.

      칠십인역은 한사람의 번역물이 아니다. 히브리어 이해수준이 서로 다른 72인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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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은 히브리어 두루마리 성경을 넣어 두었던 계약 법궤이다.(복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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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한 구텐버그 성경 원본(1456년)

     

     

     * 요한 구텐버그의 인쇄기술은 중세 종교개혁 시기에 유럽에서 인쇄기를 발전시키는데 최초로 공헌하게 된다. 1457년 그는 2권으로 된 성경 180부를 인쇄하였다. 출판된 지 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47권이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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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0-1480년  사이 제슨은 150권의 책들을 인쇄하여, 타이프 다자인으로 대단한 명성을 세우게 된다. 진열된 성경은 1480년 그가 죽던 해 인쇄한 것이다. 첫 큰 글자는 당시의 도안사가 손으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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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은 수도원 예배를 뒤해 사용했던 1500년경의 시편 113편(히브리어 성경 11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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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세기에 유럽대학들이 설립 되기전, 고등교육기관들은 수도원과 가톨릭 성당에서 교육을 실시하였다. 학자들은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료를 수집 연구하였다. 이 일에 종사하는 이들을 반직업인으로써 그로싸 오디너리아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성경은 그로싸 오디너리아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것은 종교개혁 전에 성경 주석으로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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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쇄술이 발명되었다는 것은 성경이 폭 넓게 활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521년 마틴 루터역은 종교개혁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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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여왕 메리(1553-1558)가 통치하던 기간에, 영국 공인 종교는 가톨릭주위로 바뀌었다. 이 때 많은 개혁자들이 유럽으로 건너갔으며, 그중에 한 그룹들에 의해 1560년 제네바에서 성경을 발간하였다. 제네바 성경은 구약과 외경은 외대한 성경을, 신약은 1557년 발간된 위팅함의 신약 성경을 참고하여,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기반으로 두어 성경의 잘못 번역된 부분을 수정하고, 개신교를 위한 라틴어 성경으로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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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 제임스 성경 원본(1611년)

    * 1611년 출판된 킹 제임스 성경은 좀 더 효과적인 출판을 위해 두 개의 다른 공장에서 인쇄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다른 번역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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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된 성경은 예루살렘에서 1984년 인쇄된 현대역 히브리어 성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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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된 라틴역 성경은 390년 베들레헴 가까운 수도원에서 번역한 성경이다.

     

    * 국세성서박물관에는 독일 구텐베그 성경(1456년), 1947년 발견된 길이 9m 40cm의 ‘사해 사본 두루마리 성경’(1세기경 제작), 1400년대 라티어로 인쇄한 성경 원본 44종, 러시아의 알렉산더 성경(1688년 제작), 베니스성경(1701년), 제네바성경(1599년), 킹 제임스 성경 1판(1611년), 최초의 우리말 성경 <로스 성경>(1884년) 등이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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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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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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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판화 - 민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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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잔들



    * 위치: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1동 193-3

    * 전화: 032) 874-0385

    * 관람시간: 오전 10 - 오후 4시(토, 오후2시),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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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20 12:00

    ◇ 백령동 중화동교회 ◇




    * 중화동교회는 백령도 최초의 교회이다. 백령도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인 중화동교회는 일찍이 백령도를 떠나 있으면서 개화파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허득 공(許得 公)과 서경조 목사(당시 장로)에 의해 1898년 10월 9일 설립되었다.


    * 허득 공은 중화동 출신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관계(官階)를 받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정3품 당상관, 지급의 차관보급)의 관직(官職)에 오른 백령도의 실질적인 지도급 인사였다. 허득 공은 개화 인사답게 낡은 제도와 풍습일 타파하고 진보된 서구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개혁의 가장 빠른 길은 기독교를 수용하는 것이라 믿었다. 허득 공은 백령도에 유배된 김성진씨와 뜻을 같이하여 교회 설립에 대한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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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츨라프 선교사

     

     

      * 1832년 7월17일에 백령도를 거쳐 간 독일인 선교사인 귀출라프가 성경과 기독교 교리에 관한 책자를 백령도에 남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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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스 선교사

     

    * 백령도의 모교회인 중화동교회는 1898년 10월 9일 설립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1866년 한국기독교사의 첫 순교자의 영광된 이름을 가진 토마스(Robert Jerman Thomas)목사가 백령도를 찾아 온지 32년 만에 비로소 이 땅에 첫 복음의 열매가 맺히는 순간이었다.

     

    * 한국에 복음을  전하려고 온 영국인 토마스선교사가 1865년 9월13일에 백령도 서북단의 두무진 포구에 상륙을 하여 많은 섬사람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고 약 두 달 반을 머물었다가 풍랑으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으며, 재차 한국에 왔다가 대동강변에서 순교를 당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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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화동교회는 오늘날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여러 교회들과 같이 외국인 선교사나 선교단체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허득 공의 강한 집념과 백령 중화동 주민이 자발적으로 이루어낸 신앙의 열매, 자생적 교회인 것이다.  

     

     * 허득 공은 그 해 9월 소래교회의 도움을 요청했고 서경조 장로(최초의 한국인 목사)와 홍종욱 집사. 그리고 교인 4명이 백령도를 찾아와 한 달 동안 머무르면서 성경과 예배드리는 법을 전했다. 1896년 8월25일에 허득의 서당에서 교회창립예배를 드리니 이것이 중화동교회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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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경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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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장로교 최초의 한인 목사 7인

    (뒷줄 가운데: 서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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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더우드 선교사

     

     

     * 1900년 9월에 서울에서 언더우드 목사가 중화동 교회에 와서 허득을 비롯한 7명에게 세례를 주니 언더우드목사가 중화동 교회의 첫 담임목사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 황해도의 소래교회와 중화동교회는 한국 사람에 의하여 자생적으로 생긴 교회로 언더우드를 비롯한 해외선교사들이 이들 교회를 둘러보고 한국인의 종교성과 열정에 대하여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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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전의 종

    백령도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도 빼앗기지 않는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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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마당에는 언더우드선교사와 ,허득 기념비와 백령도 선교100주년 기념비를 세워 중화동교회에 임한 주님의 특별한 섭리를 오늘에 보여주고 있다. 중화동교회가 위치한 중화동은 35가구의 주민  100여분이 모두 중화동교회의 성도이며 전목사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주일이면 모든 주민이 교회에 모여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고 한다.

     

    * 허득 공은 부인 김해 김씨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으며 허간 목사와 허응숙 목사는 공의 친손자다. 또한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 받은 허성묵도 공의 친손자이다. 공의 묘지는 중화동에 있다.

     



    * 교회 주소: 인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335

    * 전     화: 032)

    * 홈페이지 주소: 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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