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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조국의 강력한 심장이었다

 

서슬퍼런 일제와 수난의 민족사에 희망된 신앙유적 곳곳에
군산 구암교회·익산 남전교회에 서린 순국정신, 자긍심 일깨워


한국교회에 ‘조국’이라는 단어가 특히 그리웠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 잃은 설움, 국권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열망이 목 언저리까지 차오르던 바로 그 무렵이다. 신앙과 애국심이 점점 동떨어진 개념처럼 인식되어가는 시대, 때로는 그런 분리를 강요하는 듯한 시대에 우리가 찾아갈 도시는 군산과 익산이다.
새만금간척지와 옛 군산의 도심이 만나는 접점, 한 때는 기독교환경운동가들이 성지처럼 여기며 즐겨 찾던 내초도에서 오늘의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 만선을 기원하는 어선들이 무시로 출항하고, 던지는 그물 가득 고기가 펄떡이던 시절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이제 무성한 갈대밭과 즐비한 공장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터전에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① 한국인을 목숨 바쳐 사랑한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군산 내초도에 건립된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와 기념관.
② 익산 황등교회 ‘사랑의 종’은 한국선교가 시작된 1884년에 주조되었다.
③ 군산 구암교회 옛 예배당을 개조해서 건립한 군산삼일운동기념관.
④ ‘ㄱ’자 예배당을 간직해 문화재로 지정된 익산 두동교회.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

한국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정동제일교회의 설립자로, 성서번역가로, 출판가로, 청년운동가로 잘 알려진 그 이름 앞에는 또 다른 수식어가 필요하다. 식민지 조선 백성들의 한과 분개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그는 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이기도 했다. 일제의 서슬퍼런 압제가 우리 민족을 옥죄기 시작하던 무렵, 독립신문과 서재필 같은 존재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공로 덕이었다.
성경번역 회의를 위해 서울을 떠나 목포로 향하던 중 석연치 않은 해상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의 죽음을 단순한 순직으로 부르지 않고, 순교 혹은 순국으로까지 평가하는 것은 그런 개인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최후를 맞은 군산 어청도 앞 해상은 이미 2005년 감리교단에 의해 해상성지로 선포된 바 있다.
그리고 2년 후 어청도 해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교회, 그리고 한민족이 잊지 못할 고마운 은인을 향한 정성스러운 선물 같은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에는 우리 민족을 자유의 빛으로 안내한 미국인 선교사,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와 운명을 함께한 한국인 조성규의 아름다운 광채들이 채워져 있다.
독립된 건물로 세워진 순교기념관은 물론이고, 교회당 쪽의 카페, 복도, 계단 등에는 아펜젤러 가문이 이 땅에 남긴 자취들과 그에게서 비롯된 한글성경의 변천사, 그리고 옛 한국교회 선진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을 풍성하게 마주할 수 있다. 아펜젤러가 완성했던 ‘누가복음뎐’ 영인본을 이곳에서 구해간다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군산 구암교회

이제 해안선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해보자. 충청도 땅을 굽이굽이 돌아온 금강이 서해바다와 마침내 조우하는 자리, 금강하구둑 곁에 옛 장로교 선교사들의 터전이었던 구암동산이 나타난다. 옛 학교와 병원들은 이미 다른 동네로 떠나거나 사라져버리고, 군산지역 최초의 교회로 불리는 구암교회만이 외롭게 남아있다.
호남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건축한 새 예배당은 웅장한 위용과 달리,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건물 곳곳에 담고 있다. 꼭대기층 전망대를 시작으로 한 층씩 차례차례 아래로 내려오면서, 우리는 빛바랜 전시물들을 통해 민족의 수난기에 겨레와 애환을 함께 했던 한 교회의 뭉클한 사연들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새 예배당을 마주보고 있는 옛 예배당은 현재 군산삼일운동기념관으로 개조되어 사용되는 중이다. 한강 이남에서 벌어진 최초의 민족적 거사, 바로 군산 3·5만세운동의 발현지인 이곳의 뜨거운 함성을 거두어 모은 역사창고이다. 방문객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조국을 위해, 신앙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여겼던 이들의 거친 숨소리를 듣는다.
특히 옛 군산 영명학교의 교사로 군산과 익산에서 각각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박연세와 문용기라는 인물들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한 사람은 옥중에서, 다른 한 사람은 만세운동을 벌이던 장터 한 가운데서 처참히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어린 후세들에게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서야할 자리를 바로 짚어주었던 참 스승들이었던 것이다.


익산 남전교회

   
  ▲ 기장 총회에서 유물 3, 4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는 익산 남전교회의 교회록과 당회록(위). 익산시 주현동 구 시장에 마련된 순국열사비(아래)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볼 수 있다.  
삼일운동기념관에서 문용기 열사의 옷에 배인 선혈의 기억을 아로새긴 채, 우리는 그의 흔적을 쫒아 익산으로 향한다. 전주 군산 익산 김제 등 전북의 네 도시가 만나는 길목인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 자리잡은 남전교회가 익산 여행의 첫 행선지이다.
100년도 훨씬 더 된 옛날, 기독교로 개종한 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주일마다 50리길을 마다않고 구암교회까지 찾아던 남전리 주민 7명이 한 가정집에서 예배를 시작했고 그것이 남전교회의 출발이었다. 그들로부터 신앙을 대물림한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등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군산 3·5만세운동으로부터 한 달 후, 익산장터에서 4·4만세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만세행렬의 선두에 섰던 문용기는 일제가 짐승처럼 휘두른 총칼 앞에 두 팔을 먼저 잃고도, 목놓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기어이 목숨마저 앗기고 말았다. 당시 그가 입고 있던 옷은 현재 천안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고, 해마다 삼일절이면 그의 의거를 재현하는 퍼포먼스가 군산과 익산에서 신앙의 후배들에 의해 펼쳐지며 기억을 이어간다.
남전교회는 조국과 동포를 먼저 생각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훌륭하게 이어받고 있다. 늙고,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을 위해 섬기는 공간을 꾸미고 알뜰하게 이어가는 한편, 본당 현관에는 역사전시실을 마련하고 만세운동 당시의 역사자료집을 발간해 앞서 가신 님들을 추모하는 작업에도 게으르지 않은 모습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는 남전교회를 교단 최초의 유적지 교회로 지정하기도 했다.


   
  ▲ 오산면사무소 입구에 건립된 충혼비에는 문용기 장경춘 박영문 등 기독인 열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산면사무소·구시장터

남전교회에서 자동차로 몇 분 거리에 있는 오산면 소재지에서도 남전교회 교우들의 피맺힌 흔적들은 찾을 수 있다. 면사무소 입구에 건립된 충혼비에는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등 세 사람의 이름이 뚜렷이 새겨져, 지금도 이 지역 사람들의 민족애와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해방 직후 건립된 이 충혼비는 전쟁을 겪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지내며 훼손되었다가, 최근 새롭게 단장되어 산뜻한 모습으로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문용기 열사가 숨을 거둔 현장인 익산시 주현동 구시장터이다. 이곳에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친필 휘호로 순국열사비가 건립되었다. 매년 4월 4일이면 이 지역 성도들과 시민들이 모여 추모행사를 벌이고 있으며, 초라한 기념비만 남아있던 주변도 익산시가 얼마 전 대대적으로 정비해 소공원이 단정하게 조성된 상태이다.
짧은 여행을 끝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인생에 신앙이란 어떤 의미이며, 조국은 또 어떤 존재인가.’ 거창하게 역사 강의를 듣거나, 애국계몽영화 같은 것을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행은 어쩌면 현재의 나를 있게 한 뿌리를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더 둘러보아야 할 익산의 유적지들


두동교회 기역자 예배당

익산시 성당면의 두동교회는 익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의 첫 머리를 장식할 정도로 이름난 유적지다. 김제 금산교회와 마찬가지로 ‘ㄱ’자 예배당을 잘 보존해 희소성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불가능해 보였던 예배당 건축을 가능케 했던 전설 같은 일화로 인해 많은 관심을 모은다. 70년대와 최근에 건립된 교회당까지 나란히 이어져 있어 교회 건축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 되기도 한다.


황등교회 사랑의 종

익산시 황등면에 소재한 황등교회는 높이 솟아오른 종탑이 명물이다. 이 종탑 안에 간직된 종은 1884년 미국에서 주조되었다. 미국 리스펙제일교회가 신앙 안에서 형제애를 표시하는 의미에서 황등교회에 기증했으나, 전쟁 발발로 일본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1951년 6월 10일이 되어서야 황등교회에 도착했다. ‘사랑의 종’이라는 이름처럼, 이 일대 수많은 영혼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전하는 싱그런 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고현교회 당회록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되기 전, 고현교회는 이리 시내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로서 명성을 간직해왔다. 주소 이전과 설립 100주년을 기념한 현대식 예배당의 건축으로 옛 모습은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당회록이 잘 보존되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남전교회의 당회록이 해당 교단으로부터 유물로 지정된 것처럼, 고현교회 당회록에 대한 우리 교단의 공인과 보존 움직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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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4 20:02

    ◇ 군산구암교회 ◇


    * 군산개복교회와 군산구암교회는 현재 어디가 먼저인가를 놓고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 전킨(전위렴), 드루(유대모) 선교사와 한국인 장인택의 전도활동으로 군산 구암교회가 1896년 세워졌다. 이어서 1896년 군산영명학교(현 제일고교), 1902년 군산 멜본딘 여학교(현 영광여중고)가 세워졌으며, 구암 예수병원등이 세워졌다.


    * 오인묵 장로의 헌신으로 1904년 구암교회 예배당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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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선교 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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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년 ㄱ 자형 구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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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ㄱ 자교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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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킨(전위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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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킨 선교사 군산 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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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W. F. Bull, 부위렴) 선교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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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위렴 선교사와 전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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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슨(하위렴) 선교사와 배유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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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슨 선교사 부인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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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본딘 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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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번 선교사와 제자들

     

     * 1919년 2월 26일 세브란스의전 유학중이던 영명학교 출신 학생 김병수의 독립선언문 반입과 연락과, 1919년 3월 5일 구암교회 성도겸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 이두열, 김수영, 김윤실 선생 등의 주도로 구암교회 성도, 영명학교 학생, 멜본딘 여학교 학생, 군산 시민들이 참여한 호남 최초의 만세 운동 시위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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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1898년) 영명 남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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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명남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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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선교 100주년 기념비와 군산 3.1 독립운동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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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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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국 열사 문용기

    (구암교회 집사, 영명학교 교사)

     

     * 3.1 운동 주동자 박세연 목사(당시 구암교회 장로, 영명학교 교사)는 대구 교도소에서 2년 6개월 간 옥살이를 하였고, 출옥 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다음 목회자가 되어(1926년), 목포 양동교회 등 호남지방의 교회를 섬기다, 천황에 대한 불경죄로 투옥되어 1944년 순교하였다.

     

     * 군산구암동산 3.1 운동은 자주독립을 위한 애국애족의 순교순국 정신이 드높게 깃들인 한강 이남과 호남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으로 이곳 구암동산과 군산구암교회는 그 발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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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년 건축된 구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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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선교 기념예배당


    * 주소: 전북 군산시 개복동 13-1번지


    * 1899년 12월 19일 선교회 본부가 당시 임피군 개정면 구암리로 이사하고 12월 21일부터 선교사들과 일부 군산교회 교인들이 함께 예배를 시작하니, 이것이 군산 지역에 세워진 두 번째 교회, 구암교회이다. - 개복교회 110년사 중에서 / 군산교회의 뿌리를 어느 한 쪽 교회에서 차지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두 교회가 서로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보여진다. 개복교회 110년사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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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4 20:04

    ◇ 익산 남전교회 ◇



    * 남전교회는 1897년 설립된 익산 최초의 교회이며, 1919년 3.1 운동(4.4 익산 솜리 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이다. 또한 만세 운동의 현장에서 순국한 문용기 열사, 박영문 열사, 장경춘 열사, 박도현 열사를 낳은 교회이기도 하다. 애국지사 김인전 목사, 박연세 목사의 모교회인 남전교회는 6.25 전쟁의 시련을 고스란히 겪은 교회이며, 1970년대 기독교 인권운동의 중심에 섰던 교회, 80년대 반부패 운동에 당당하게 나섰던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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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입국한 전킨 선교사(한국명 전위렴)는 1893년 9월 육로를 이용해 전주를 답사한 후 서울로 올라갔다. 1894년 레이놀즈 선교사(한국명 이눌서)는 해로를 이용, 군산에 도착해 전주로 들어갔다. 선교사들은 오가는 길, 또는 장터에서 복음을 전했다.

    * 이 과정에서 1897년 익산에 사는 사람 몇 명이 복음을 들었다. 이들 중 7명이 복음을 받아들여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이들 7명은 주일을 지키기 위해 50리나 떨어진 군산의 전킨 선교사 집을 드나들었다. 동네에서는 이윤국의 집에 모였다. 전북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남전교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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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킨 선교사가 타고 온 빅토리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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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신교 선교 초기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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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유지, 하위렴 선교사의 전도 여행(1898년 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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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남장로교 최초 7인 선교사와 장인택 조사

    (남전교회 당회록에 보면 장세경 조사가 나온다. 1899년 이전부터 활동하였다. 그러나 장인택 조사와의 관련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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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대모(Drew, A. Damer) 의료선교사의 집으로 의료 선교를 펴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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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위렴 선교사 집으로 전도하며 예배드리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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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교회 4번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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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용기

    * 독립운동가. 전북 익산 출생. 1919년 3 ·1운동을 맞아, 이리 역전에서 개최된 익산군민대회에서 연설, 만세시위에 나설 것을 호소하던 중 일본경찰의 칼에 찔려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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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용기 열사 혈의(독립기념관 소장)

     

    * 남전교회는 익산지역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919년 4월4일 남전교회 최대진 목사를 비롯, 김만순 김필례 장경춘, 군산영명학교 교사 문용기(문정관으로도 불린다)와 학생 박영문 박도현 등은 솜리 장날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였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시위대는 솜리 장터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헌병대가 긴급 출동, 시위를 강제 진압했다.

      그 날 문용기는 일본 경찰이 칼로 오른 팔을 내려치자 왼손으로 태극기를 집어 들어 계속 만세를 불렀고 다시 왼손까지 내려치자 땅에 뒹굴면서 마지막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순국하였다. 이 때 박영문 장경춘 등이 함께 현장에서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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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면사무소 안에 순국열사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의 충혼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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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교회 백주년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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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국 열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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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년 3월 1일 온 겨레가 부른 대한민국 독립만세는 한일합방에 항거하는 통렬한 민족의 함성이었다. 이해 4월 4일 익산시에서는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박도현, 서정만을 중심으로 이곳 장터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 앞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지휘하던 중 무자비한 왜적의 총칼아래 장렬히 순국한다. 이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1949년 4월 29일 익산시민일동의 명의로 이 비를 건립하였다.

    * 위치: 익산시 주현동 105-19번지(위치: 익산 구시장 화교 앞)

     

    * 남전교회 교인들의 4. 4 만세운동은 후에 이승만대통령이 높이 평가하여 친필로 순국선열비문을 하사하였다. 6.25 전쟁 중 이 비석을 넘어뜨리고 “李承晩書”(이승만서)라고 새긴 부분을 깨뜨려 없애려 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주소: 전북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618-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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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4 20:04

    ◇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



    * 아펜젤러 선교사는 여명기 조선 땅에 들어와 배제학당을 세우고, 정동제일교회를 세워 어린 양들을 돌보다 해상사고로 지난 1902년 고군산열도 어청도에서 순교하였다.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 105주년을 맞이하여, 전북 군산시 내초동에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 기념교회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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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펜젤러 선교사

     * 아펜젤러는 정동제일교회를 창립하였고, 배재학당의 교장으로 교육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성서번역사업, 문서사업, 청년운동을 통해 민족 계몽과 복음전도에 힘썼다. 1902년 6월 11일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로 가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선박충돌사고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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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펜젤러는 1887년 4월 북쪽지방으로 1차 전도여행을, 1888년 봄에는 2차 전도여행을 하였다. 5월 포교금지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전도여행을 감행하여 1888년 한 해 동안 전도 사업을 위해 1830마일이나 지방을 여행하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위해 이 땅을 측량하고 상세지도를 그려낸 진정한 순회 선교 탐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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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의 배재학당

     * 아펜젤러는 1885년 8월 3일 자신의 집에서 두 명의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근대학교인 배재학당의 시작이다. 1887년 2월 고종이 “유능한 인재를 양육하는 집”이란 뜻의 배재학당이란 교명을 하사하였다.

      한국 근대기에 있어 개화, 독립운동의 산실이 되었고, 민족의 수난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하며 기독교 학교의 대표적 소임을 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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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제일교회

    * 아펜젤러는 한국인들에게 성경공부도 시키고 예배도 드리기 위해 정동에 위치한 한옥 한 채를 구입하여 이곳을 “벧엘예배당”이라 이름지었다. 1887년 10월 9일 이곳에서 첫예배를 드림으로 한국 감리교회 최초의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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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펜젤러 선교사가 승선했던 여객선

     

    *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어조수(조한규), 친지의 부탁을 받은 이화학당 여학생과 함께 목포에서 열린 성서번역자대회에 참석하러 배를 타고 가다가 다른 배와 해상 충돌 당하였다. 조난당한 배에서 살아남은 광산업자 보울비에 따르면 아펜젤러 선교사는 충분히 탈출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 아래칸 3등 선실에 있던 한국인 조수와 이화학당 여학생을 구하려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쓰고 있다.

    * 아펜젤러 선교사가 숨진 배를 찾기 위한 작업은 다각도로 진행되었다. 미국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고, 학자들도 여러 갈래로 검증에 나섰다. 그러나 아직 아펜젤러 선교사가 타고 있던 조난한 배와 유해 탐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비용부담이 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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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양화진의 아펜젤러 선교사 묘역

     * 지금 서울 마포구 양화진에 있는 아펜젤러 선교사 묘역은 가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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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도 밟지 않은 툭 트인 바다 밑 묘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묻힌 무덤 속에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는 잠들어 있다. 그는 그의 품에 영혼을 안고 천국에 들어갔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장례식 때에 사용한 조가가 추모비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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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펜젤러 순교 기념관의 1층에는 아펜젤러의 생애에 대한 자료, 2층에는 한국교회역사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 주소: 전북 군산시 내초동 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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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4 20:06

    ◇ 익산 두동교회 ◇


    * 두동교회는 1923년 5월 18일 해리슨 선교사의 전도로 당시 삼천석지기 부자 박재신이 그의 부속사를 빌려주어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급속하게 성장하던 두동교회는 박재신의 마음이 변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박재신의 사랑채에서 교회가 시작될 때 안 나오면 논을 뗄까봐 교회에 나왔던 교인들이 이번엔 거꾸로 나가면 논을 뗄까봐 눈치를 보며 교회 출입을 끊었다. 1929년 당시 소작인들과 부인들뿐인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인근의 땅을 마련, 지금의 ㄱ자형 교회를 어려운 가운데 눈물로 지었다고 한다.


    * 두동(杜洞)은 토박이 말로 “막은 골”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말 그대로 막다른 동네다.


    * 두동교회 구본당은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두동리 385-1번지에 위치하며, 2002년 4월 6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7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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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건물은 1923년 건립된 두동교회 초기 본당으로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 남녀유별의 관습이 남아 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 우리의 독창적인 “ㄱ"자형 건물이다. 건물의 한쪽은 남자석, 다른 한쪽은 여자석으로 구분하고 중앙에는 휘장을 쳐 남녀가 볼 수 없게 만들었으며 모서리에 단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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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녀 회중석을 직각으로 배치하여 서로 볼 수 없도록 하였으며 두 축이 만나는 중심에 강단을 시설하였다. 북서쪽 모서리의 강단은 한 칸 규모이며, 남녀 회중석은 각각 3칸 크기로 같은 규모이다. 전면에서 볼 때 'ㄱ' 자형 평면 중 남북축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남자석이고 동서축은 여자석이다.

     

     * 남자 석이나 여자 석이 10평정도 크기가 똑같은 것이 금산교회(남자 석이 긴)와 다르다. 또한 성경 구절을 옮겨 쓴 금산교회 것과 다르게 간단히 상량 일자만 적어 놓았다. 강단도 금산교회 것과 약간 다르다. 금산교회 강단이 2단으로 남자 석을 향하고 있는데 반해 두동교회 것은 1단이며 강단 모서리 부분을 비스듬히 깎아 강단 방향을 남녀 석 중간을 향하게 하였다. 설교자는 곁눈질로 남자, 여자 석을 모두 볼 수 있었지만 예배당 안의 남녀 신도들은 서로 보지 못하였다.

      남녀 석 공간 크기가 같게 한 것이나 강간이 남녀 석 가운데 향하게 배치한 것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두동교회 ㄱ 자 예배당은 남녀를 구분하면서도 남녀 평등을 추구한 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두동교회는 전도부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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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한 교회 건물은 전국적으로 만들어졌으나 1930년대를 전후해서 사회적 인식 변화로 내부의 휘장이 제거되고 더 이상 “ㄱ”자형 건물이 건립되지 않았으며, 해방 이후에는 남녀가 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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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년대에는 남녀유별의 유교적 유풍에 따라 내부를 구분하였던 기존의 휘장들이 제거되는 일반적인 경향에도 불구하고 두동교회가 건립된 점이 주목된다. 현재 “ㄱ"자형 교회 건물은 두동교회와 금산교회에 남아 있는데, 한국 기독교 전파과정의 이해와 교회 건축연구에 중요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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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전북 익산시 성당면 두동리 38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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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4 20:11

    ◇ 군산개복교회 ◇



    * 1892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 중 이눌서(W. D. Reynolds)목사와 유대모(Drew A. Damer. M. D) 의료선교사가 1894년 3월 30일 인천에서 배로 군산에 상륙하여 먼저 첨사에게 순회전도를 시작하니 이것이 군산교회의 씨앗이요, 군산에서 시작된 첫 교회이다.

    * 1896년 군산교회(개복교회) 성도인 송영도와 김봉래 씨가 전위렴 선교사의 집례로 세례를 받으니 호남의 첫 세례교인이 되었다.

    * 1906년 개복동 13-1번지에 새로 예배당을 신축하여 이전하면서 군산교회를 군산개복동교회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전라노회록에 보면 1915년까지 군산교회 또는 군산개복동교회가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82년 개복동교회를 개복교회라 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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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눌서 선교사(William Davis Reyno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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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대모 선교사(Drew. A. D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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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위렴 선교사(William Mc Cleery Junkin)

    개복교회 제1대 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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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의덕 선교사( 테이트 L. B. 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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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위렴 선교사 - 해리슨(W. B. Harrison)

     1905-1911년까지 개복교회 제2대 당회장으로 사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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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지방 최초의 선교사들과 군산에 입항한 유대모 선교사의 의료선교선(189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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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최초의 선교사였던 전킨(전위렴) 선교사의 집으로 주일에는 약 4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송영도, 김봉래 씨가 호남 최초의 세례를 받은 군사교회(현 개복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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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4년 군산 부두 선창가 짐꾼들 유대모 의료 선교선이 닿았던 곳(수덕산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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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지방 최초로 군산교회(현 개복교회)가 세워졌던 1895년 수덕산(현금동)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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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6년경 군산 선창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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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년 군산지방 3.1 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한 분들(김성은, 정지선, 홍종익, 전종식, 유희순)이 개복교회 교인들이었다. 제 5대(1923-1935년) 홍종필 목사는 1930년 19대 총회장을 역임하고 본 교회강단에서 설교하시다가 1935년 48세의 나이로 순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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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6.25 전쟁 한국전쟁으로 교회의 당회록과 제직회 회록을 공산군에게 빼앗겨 교회의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없으나, 그 당시 청년회장 백형기와 고인영 집사가 교회를 사수하다가 순교하였다.

     * 제 7대(1947-1954년) 김현정 목사는 6.25 전쟁 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교회의 부흥을 통한 125평 성전건축과 부속건물(20평)을 건축하게 된다.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만을 강조하던 중, 당시 공산당에 끌려가 갖은 고문과 협박을 받는 중 장 파열이 되어 옥중에서 죽음직전에 풀려나오기도 했다. 1955년 미국 집회에서 설교 하던 중 공산당 고문으로 장파열 입은 것이 악화되어 1955년 10월 29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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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년 12월 건축한 현 개복교회 본당

     

    * 1989년 12월 건축한 교육관 건물

     

    * 순교자의 피로 다져진 신앙위에 세워진 군산 개복교회는 수차례 분열과 격동 속에서도 전통적 신앙과 진리를 보수 하면서 오늘날까지 부흥과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 주소: 전북 군산시 개복동 13-1번지


    * 지경교회와 개복교회는 시작? - 교단 분열과 관련해서 자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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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4 20:18

    ◇ 익산 나바위성당 ◇



    * 나바위성당은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화산리라는 지명은 지금 성당을 담고 있는 산이 절경이어서 송시열이 화산(華山)에서 유래하였다. 성당 이름도 산 이름을 따라 화산성당이라고 불러오다가 완주군 화산면과 혼동을 피하고자 1989년부터 ‘나바위 성당’으로 부르고 있다.

    * 이 성당은 조선 헌종(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광무 10년(1906년)에 건립하였는데, 베르모렐(장약슬 요셉) 신부가 1906년 신축공사를 시작 1907년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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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바위는 나암의 우리말 표기로 광장 같은 너럭바위가 화산 정상에서 강가를 따라 남서쪽으로 널려있어 생긴 마을이름이다. 화산에서 강경 쪽으로 지척의 거리에 황산리가 있는데 황산과 황산포가 있어서 황산리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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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당 내부에는 오른쪽 작은 제대 감실 안에 성 김대건 신부의 목뼈 일부 유해가 모셔져 있고, 성당 제대 주변에 있는 세례대와 성상들은 중국 남경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한 것으로, 성당 건축 때 들여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성당 내부에는 전통 관습에 따라 남, 여석을 구분하기 위한 칸막이 기둥이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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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계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하고, 목수일은 중국인들이 맡았으며 건축양식은 한옥의 전통양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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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처음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유입과 그 발전과정에서 볼 때 서구식 성당건축양식과 우리나라 전통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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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년 종각을 덧붙여 중축하면서 목조로 되어있던 벽체를 벽돌로 개조하였고, 1922년 회랑의 기둥 아랫부분을 석주로 바꿨으며, 1982년 종각 내부를 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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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당 마당에는 본당을 설립하고 성당을 건축하였으며 1908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계명학교를 운영하는 등 22년 동안 나바위 본당의 기초를 다진 베르모렐 신부를 기리기 위한 공적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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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사제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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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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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mberbly 2014.01.2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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