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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교’에서 신앙의 선배를 만나다

 

‘호남지역 복음의 산실’ 전주 신앙문화유산 곳곳에 자리잡아
다가공원·신흥학교부터 예수병원·서문교회까지 숨결 그대로


문화유적을 답사하는 일은 사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비록 지금은 다른 세상에 있지만, 우리들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 그들의 후손인 우리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위해 값진 땀방울을 흘렸던 사람들과의 만남.

천년고도라고도 불리는 호남지역 복음의 산실, 전주 여행은 바로 그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이다. 오늘의 여행은 전주천 동쪽과 서쪽을 이어주는 다가교 위에서 시작된다. 다가교 동쪽 정면에는 전라도 최초의 교회인 서문교회가 우뚝 서있고, 서쪽 언덕배기에는 신흥학교 기전학교 예수병원 등 1세기 전 파란 눈의 선교사들이 가난하고 복음에 무지한 이 땅의 백성들을 품어주던 따스한 공간들이 다정한 친구들처럼 어우러져 있다.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흥학교 리차드슨관. 화재로 소실돼 현관 부분만 남았다.  
먼저 다리 서쪽에서 처음 마주치는 다가공원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400년 역사를 가진 활쏘기 터 천양정을 지나면, 오랜 역사 속에서 전주 땅에 값진 행적을 남긴 수많은 이들의 공적비들을 볼 수 있다. 그 중 맨 오른편에 자리한 두 개의 비석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김인전, 배은희. 서문교회의 제2대, 3대 담임목사를 나란히 역임한 두 사람은 기미년 당시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애국지사이자, 유치원과 학교 등을 설립해 후세를 양성한 교육자였고, 각각 임시정부와 해방된 조국에서 맹활약한 명망 높은 정치인이기도 했다. 더불어 이곳 사람들의 뇌리에 그들은 아직도 목회자이자 위대한 스승으로 남아있다.

이제 다가공원에서 길을 건너 신흥학교로 찾아가보자. 신흥학교는 선교사들이 호남 땅에 세운 첫 번째 근대학교이자, 김인전 배은희 목사의 뒤를 따라 신앙의 후예, 애국혼의 열매들로 자라난 새싹들의 요람이었다. 지난 세기의 흔적들은 아직도 학교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스미스관과, 30년 전 아쉽게도 화재로 불타버리고 현관 기둥과 아치만 남은 리차드슨관에서 찾을 수 있다. 두 건물은 2005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신흥학교를 빠져나오기 전 놓치지 말고 들러야 할 것이 정문 앞에 세워진 삼일운동기념비이다. 삼일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제의 탄압에 옥고를 치른 교사와 학생들을 기념하는 상징물이다. 전주를 여러 차례 답사하며 <전주 비빔밥과 성자이야기>라는 걸작을 내놓은 이덕주 감신대 교수는 90년대 후반 신흥학교를 둘러보며 ‘1만평 넘는 넓은 교정에 이들의 항일투쟁을 기리는 기념물 하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토로한 바 있다.

같은 회한을 지역 목회자들과 성도, 학교 동문들도 공유하고 있었던가 보다. 이들은 힘을 모아 마침내 2000년 3월 1일에 신흥학교 입구와 전주지역 만세운동이 시작된 매곡교, 일명 싸전다리 부근에 각각 만세운동 기념비를 세우고 늦게나마 선열들을 향한 추모의 마음을 정성껏 표한 바 있다.

신흥학교 바로 뒤편에 자리 잡았던 기전학교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하고, 현재는 기전대학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교정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오르는 동안, 한 오래된 비석에서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명 인돈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휴 린턴과 그 아내이자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의 딸인 샬로테 린턴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신흥학교 기전학교, 그리고 군산의 영명학교 등의 교장을 역임하며 수많은 후학들을 이끌었고, 대전 한남대학교 설립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된 신흥학교와 기전학교가 해방 후 재건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노고 덕분이었다.

   
  ▲ 전주예수병원의 옛 건물인 엠마오사랑병원의 고풍스런 전경(좌)과 예수병원의학박물관에 전시된 마티 잉골드 선교사의 흉상.  
기전학교에서 길을 되돌아 나와 신흥학교를 지나서면, 당초 기독간호사의 양성소로 출발해 지금은 어엿한 대학교로 성장한 예수대학교를 만난다. 그리고 바로 연이어 서원고개 꼭대기에 우뚝 서있는 예수병원이 나타난다. 초대 원장 마티 잉골드 선교사를 비롯해, 하위렴 구바울 변마지 설대위 등 영어 본명보다도 한국식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의료선교사들이 청춘의 열정을 불살라가며 지치고 병든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사랑의 의술을 펼친 터전이다.

 

예수병원의학박물관

그러나 옛 선교사들의 자취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다시 맞은편 다가공원 방향으로 길을 건너야 한다. 다가공원 쪽에도 본래 예수병원 건물이었던 엠마오사랑병원을 위시해, 예수병원의학박물관이 들어선 기독의학연구원, 선교사묘역, 한일여성복지관, 예수병원어린이집 등 수많은 기관과 유적들이 밀집해 있다.

특히 우리나라 민간 의료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정식 박물관에 등록된 예수병원의학박물관은 1백년 넘게 이 땅을 거쳐간 의료선교사들의 자취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보고이다. 전시실 입구에 놓인 마티 잉골드 선교사의 흉상을 비롯해, 수많은 기록과 연표들, 문화재급 가치를 인정받는 기록사진들, 그리고 근대문화유산 목록에 오른 방광내시경 요도확장기 등 의료용품들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지나칠 수 없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의학박물관 뒤편으로 난 작은 계단을 타고 산길을 오르면, 지금까지 들른 모든 곳의 경치가 한 눈에 내려다뵈는 양지 바른 동산 위 여남은 개의 무덤이 순례객들을 기다린다. 데이빗 랭킨, 해리슨 부인 등 이 땅을 사랑하고, 이 땅의 사람들을 아끼다가 자신의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놓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안장된 묘역이다. 서울 양화진이나 광주 양림동산처럼 잘 단장되어있지는 못하지만, 절로 숙연함이 배어나는 분위기만큼은 다른 두 곳과 여일하다.

특히 네 부자가 이 묘역에 함께 묻힌 전킨 선교사 가족의 사연을 알게 된다면 어느 누구라도 가슴 뭉클한 느낌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전킨, 한국명 전위렴 선교사는 군산선교의 개척자이자 열정적인 사역자였다. 건강이 악화되어 전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복음을 향한 불타는 헌신의 의지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선교부의 만류까지 뿌리치며 최후까지 방방곡곡 전도에 힘을 쏟던 그는 53세의 나이에 먼 타향에서 눈을 감는다.

그의 묘비 앞에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작은 무덤의 주인들은 시드니, 프랜시스,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전킨 선교사의 세 아들이다. 인생의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숨진 이들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셋이나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 부모의 인생은 그저 불행이었고, 실패였던 것일까. 적어도 이 땅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기전학교는 바로 전킨이라는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기념한다는 뜻으로 명명한 것이고, 전주의 자랑인 한옥마을에도 동락원이라는 유명한 건물에 전킨기념관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그들에게 사랑의 빚을 진 수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학교에서, 병원에서 그리고 사회 각계에서 고인의 신앙을 계승하며 지금도 복음의 릴레이를 이어가는 것이다.

 

‘호남모교회’ 서문교회

   
  ▲ ①전주서문교회의 자랑인 종각에는 100년 전의 자취가 서려있다.
②‘깡통교회’로 널리 알려진 전주안디옥교회 예배당.
③전주다가공원 입구에 세워진 김인전 배은희 목사의 공적비.
 
이제 순례의 종착지를 향해 다가교로 되돌아가자. 다가교를 건널 때, 그 옛날 신흥과 기전의 학생들이 서문교회 주일예배에 참석코자, 만세운동에 동참코자 다리 위에서 긴 행렬을 이루던 장관을 떠올린다면 당시의 웃음소리와 함성이 슬그머니 귀를 스칠지도 모른다.

다리를 건너 서문교회에 들어서면 호남의 모교회라는 자긍심이 우뚝 선 종각과 설립 50주년 당시 세운 기념비에서부터 느껴진다. 특히 전킨 선교사 별세 직후, 그의 신앙과 사역을 기리기 위해 세운 교회 종각은 100년 전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전주의 대표적인 기독교유적으로 손꼽힌다.

교회 내 100주년기념관 안에 설치된 역사자료실 또한 순례객들이 반드시 들려보아야 할 공간이다. 말을 타고, 배를 타고 호남 땅의 전도행전을 온 몸으로 써내려간 선교사들의 모습, 그들의 사랑을 젖줄로 삼아 무럭무럭 자랐던 어린 소년소녀들의 해맑은 표정을 바로 여기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명감에 충만하고, 행복에 겨운 그들의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하나님나라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마음 깊이 확신하게 된다.

 

더 둘러보아야 할 곳들

전주에는 주요 교회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순례코스가 만들어진다. 전주 땅에 처음으로 선교사가 정착한 동네인 은송리(현재의 완산동) 일대에는 완산교회, 남문교회 등 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 온 유서 깊은 교회들이 적지 않다.

한국순례문화연구원은 김제 금산교회를 시작으로 청도리교회 중인교회 효자동교회 예수병원 신흥학교 서문교회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순례길’ 개신교 유적코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순례문화연구원의 도움을 받으면 각 유적지의 상세한 해설과 함께, 도보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다. (063)232-5000.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가 ‘깡통교회’로 이름난 전주안디옥교회이다. 화려한 외양을 추구하는 대신 군대 막사를 연상케 하는 소박한 교회당을 오랜 세월 본당으로 사용하면서, 재정의 대부분을 선교사역에 집행하는 이 교회의 남다른 사연은 신앙 유무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준다.

안디옥교회와 전주YMCA회관 사이에 있는 ‘최용성 주님모습갤러리’도 잠시 시간 내어 찾아가 볼만하다. 지역교회들을 순회하며 80여 차례에 이르는 성화전을 열면서, 기독문화계에 한 획을 긋고 있는 작가의 영성 깊은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본 연재 기획물은,

1)서울, 2) 전라남도, 3) 전라북도, 4) 경상도, 5) 충청도, 6) 강원도, 7) 경기도 순으로 총 23회에 걸쳐서 기독신문에 연재된 순서에 맞추어 올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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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1 17:07

    ◇ 전주 서문교회 ◇




    * 전주 서문교회는 1893년 늦은 봄 미국남장로교회 선교회 레놀즈 선교사의 파송을 받은 정해원씨가 전주에 도착하여 동년 6월 완산 밑 은송리에 초가 1동을 예배처소로 마련하고 복음 전파를 시작하니 전주서문교회이며, 호남의 최초 교회가 된다.


    * 서문안 여자 소학교를 설립(1912년)한 후 여자 야학회, 전주 유치원, 숭덕 성경학교 등을 세워 교육 사업에 기여하였다.

    * 교회 명칭: 전주교회 -> 1905년 전주서문외교회(전주서문밖예배당, 전주부중교회) -> 1955년 전주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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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 최초의 예배당

    전주서문교회 최초 당회장 테이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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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이트(한국명: 최의덕)와 부인 잉골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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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놀드 선교사(한국명: 이눌서)  

    서울, 전주, 평양에서 활동하였으며, 평양 장로회 신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성경번역과 많은 논문을 남김. - 서문교회 2대 담임목사(당시 전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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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번역 위원: 레이놀즈, 이승두, 김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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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국 목사

    * 1897년 한국인 5명(13세의 김창국, 김창국의 모친 진주 강씨, 김내윤, 임씨, 김성희)이 세례를 받았다. 이로써 ‘전주교회’가 한국인 세례교인이 있는 교회로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 김창국(金昶國) 1884-1950.

    김창국은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조모와 모친이 매티 테이트(최구덕) 선교사의 전도로 전주에서 최초의 기독교 신자가 되자 그들의 영향으로 어린 나이에 기독교 교인이 되었다. 소년 김창국은 테이트 선교사를 도와 장날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등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적극 도와주었고, 1897년 7월 전주교회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는 5명에 포함되었다. 숭실중,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목사가 된 그는 전북 익산과 제주도에서 전도목사를 역임한 후 광주남문외교회(금정교회)를 거쳐 1924년부터 광주 양림교회를 설립하여 그곳에서 25년간 시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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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세 확장으로 예배당을 ‘ㄱ’자

    예배당으로 증축,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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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패집 이전의 서문교회(19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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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에서 모인 호남지방 선교사 가족들(18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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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티 데이트 선교사 - 한국명 최구덕

    (최의덕 선교사의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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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킨 선교사 순직 기념 종 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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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 상량식 광경(19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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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한옥 종탑은 1908년 별세한 전킨(W.M. Junkin)을 기념하여 그 아내(M.L. Junkin)가 기증한 직경 90cm짜리 큰 종을 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웅장하면서도 맑은 소리가 20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일제 말기 공출 때‘전킨 목사 기념종’은 없어졌다. 당시의 종은 없지만, 지금도 종탑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한국에 남아 있는 교회 종탑 중 예배당 건물과 독립된 종탑으로는 최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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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선교 초기 선교사들 사택

     

     

    * 1905년 남문교회 분립을 필두로 16개의 교회를 분립, 개척하며 호남 지역 모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며 발전하고 있다.

     

    1905년 남문교회 분립  1907년 중인교회 분립 1926년 완산교회 분립 1926년 태평리교회(용흥리)분립

    1930년 중앙교회 분립  1934년 동부교회 분립 1934년 서신교회 분립  1944년 금암교회 분립 

    1949년 화산교회 분립  1949년 중산교회 분립  1950년 태평교회 분립 1956년 남성교회 분립 

    1979년 남원중부교회 복구설립 1986년 세심교회 분립  1986년 섬진교회 개척  1993년 송산교회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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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의덕 선교사와 잉골드 부인의 전도여행

    (1905년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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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문교회 고패집 이전 모습(19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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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들과 젼킨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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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사 내외와 부녀 및 아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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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회 전주 여섯 유년주일학교 연합예배대회

    (1924년 서문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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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들과 랭킨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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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서문교회 아동들과 교사들(1911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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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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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전 목사의 상해 임시정부 활동,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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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전 목사 장례식(1923년 중국 상해)

    - 서문교회 한국인 2대 담임목사로서 독립운동 중 상해에서 서거.

    - 전주 3.1 운동을 주도 한 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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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은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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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서문외교회 아동성경학교

    제1회 졸업생 기념(1929년)

     

    * 배은희(裴恩希, 1888년 1월 15일 ~ 1981년 9월) 목사는 전주서문교회 담임목사로 1921-1936년까지 사역하였다. 그는 평양신학교 재학 중인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각 지방에서 모여든 신학생들과 더불어 평양신학교에서 열렬하게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주모자로 지목되어 경찰에 잡혀가 곤욕을 치르고 강제 휴학을 당한 후에도 고향 경북 대구지방으로 내려가 대구를 위시한 각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활동하였다.

    * 1921년 전주유치원 설립과 전주지역 여성계몽운동에도 공헌한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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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서문외교회 경영의 전주유치원 졸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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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문외 교회 소녀 가극단(1926년, 전주)

    뒷줄 좌: 이건직, 중: 배은희 목사, 우: 현제명

     

    * 1924년 7월 현제명 선생과 대원 14명으로 찬양대를 조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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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YWCA 초창기 인물들(1929년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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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애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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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애인 선생 묘소를 찾은 전주여자기독청년회원들, 1933년.

      * 방애인 선생은 황해도 황주 출신으로 1926년 4월 전주기전여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서문밖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녀는 걸인, 고아와 빈민을 돌보며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 힘썼으며 전주고아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가난한 자의 천사”, “거리의 성자”로 불리울 만큼 지성으로 봉사하면서 전도에 힘썼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봉사하다가 1933년 9월 16일 2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잣집 딸과 신여성 처녀로서 단장하던 값진 옷감도, 향수와 크림도 그의 소지품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은 단 한 벌의 옷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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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애인 선생 묘소 

    * 이 묘소는 전주시 완산구 효자 공원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전주시 도시계획 사업에 따라 이전되겠기에 전주서문교회 안식원에 1999년 9월 16일 전주서문교회에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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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주일학교 연합예배(1934년 전주신흥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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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 야학회 제1회 졸업생 기념촬영(19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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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립 50주년 기념비

     

    * 이 기념비는 화강암으로 4각 기둥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꼭대기에 십자가를 깍아 세웠다. 당대 ‘전주 명필’ 설송 최규상이 썼다는 예서체 비명(碑銘) 글씨가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럽다.

     

    * 비석 측면 글귀들은 일제 말기라 한글을 쓰지 못하게 해서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일제는 반미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서기(西紀) 연호조차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렇다고 ‘明治’‘大正’같은 일본 연호를 대놓고 쓰기도 뭣해서 이 비석에는 ‘乙未’(1895) 같은 간지(干支) 연호를 쓰고 있다. 서기 연호를 쓸 경우엔 일본 연호를 같이 써서 일제의 신경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해방 후 ‘昭和’란 연호를 시멘트로 발라 읽을 수 없게 만든 것도 시대 따라 변하는 민심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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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서문외교회 제직회록, 1908-1934

    서문교회 제직회록은 1908년 4월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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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서문외교회 당회록, 1909-1953

    서문교회 당회가 조직된 것은 1908년이며, 당회록은 1909년부터 현재까지 비교적 출실하게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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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전과 신흥학교 폐교기념 화분대

    * 1937년 선교사들이 신사참배 거부를 위해 학교 문을 닫고 돌아갈 때 기전과 신흥 학생들이 ‘폐교기념’으로 학교 이름을 새겨 서문교회에 기증한 목제 화분대 한 쌍이다. 그 위에 놓였던 청동 화병은 일제 말기 공출 때 ‘전킨 목사 기념종’과 함께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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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비

     

     * 1990년에는 교회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교육시설의 확충과 사회봉사 사업전개를 위하여 평면 120평 연건평 705평 지하 1층 지상 5층의 [100주년 기념관]을 건축키로 하여 1992년에 완공한 후 1993년 교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선교 2세기에 진입하여 하나님 나라 건설에 신령하고 능력 있게 발전하고자 힘을 기울이고 있다.

     


    *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3가 123-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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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1 17:09

    ◇ 전주 신흥학교 ◇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이다. 1900년 9월 9일 미국장로교 선교사인 레이놀즈 선교사에 의해 설립, 개교하였다. 교훈은 '지(智), 인(仁), 용(勇)'이며 교목은 은행나무, 교화는 무궁화이다. 신흥이란 명칭은 "새로운 여명(黎明)"(New dawn)을 뜻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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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놀즈 선교사(한국명 이눌서)

    * 레이놀즈 선교사: 한글 성경 번역의 아버지

     

    *1893년 태어난 장남 윌리엄이 전염병에 걸려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레이놀즈 부부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아들을 양화진에 묻고 더 열심히 주의 일에 헌신했다.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을 맡아 1900년 신약전서를 완역했다. 그리고 이어 1910년 구약성서 번역을 완료했다. 이들 부부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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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흥학교 교사전경과 선교사 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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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사촌을 배경으로 한 신흥학교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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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흥학교 뒤편 선교사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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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들의 수업광경 -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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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문교회로 예배 드리러가는 신흥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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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주일학교 연합예배 - 1934년

     

     * 1937. 09. 08    신사참배 거부 문제로 폐교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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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 09. 09     이눌서 선교사가 희현당 옛터에 신학문의 터전 마련

     

     

    * 조선 숙종 26년(1700) 관찰사 김시걸이 이곳 황학대 자리에 서원을 창건하고 희현당이라 이름하였다. 희현당 사적비(1707)와 희현당의 중수비(1743)는 신흥학교의 역사가 희현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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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당 옆 1928년에 지었던 “리차드슨관”은 1982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중앙 현관 출입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담쟁이 넝쿨에 휩싸인 현관 출입구엔 모퉁이돌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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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 04. 20    중학교 3년제 고등학교 3년제 분립 병설하다. 

       * 1962. 10. 07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이 설립되다. 

     


    *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1가 18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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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1 17:12

    ◇ 전주 기전여학교 ◇




    * 1900년 4월 24일 미국 남장로교 최마태(Mattie Tate) 선교사가 소녀 6명으로 학교 시작한다. 1909년 7월 29일 교명을 젼목사 긔렴여중학교(Junkin Memorial School for Girls)로 정한다. 1910년 10월 3일지금의 예수병원 자리에 붉은 벽돌 서양식 2층 건물을 신축하고 이전 완료한다. 3.1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에서 어김없이 기전은 그 시대 중심이 서있었고,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끝까지 맞서서 자진 폐교로 항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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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대 전킨 교장(1904년-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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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대 랭킨 교장(1907년-1911년)

    1911년 8월 13일 순직한다.

     

     * 어머니!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인들이 보여준 환영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먼 곳에서 오셨군요. 우리는 당신이 오셔서 기쁘답니다.” “우리 소녀들을 가르칠 선생님을 보내달라고 오랫동안 기도해왔는데 당신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 제2대 교장 랭킨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고국의 어머니께 보낸 편지 중에서(1907.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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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킨 선교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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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의 기전여학교 건물(1094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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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랭킨 교장과 학생들(19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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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전 여학교 옛 건물(1910년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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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전 여학교 옛 건물(19153년 촬영)

    지금의 예수 병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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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티 테이트 선교사와 학생들(19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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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업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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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급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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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과 제 4회 졸업(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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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전 자조반 학생(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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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전 여학생(19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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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튼 교장님과 전교생 기념 촬영(1920년대)

     

     * 1915년 기전 학생 임영신, 오자현, 송귀내, 유채봉, 오순애 등이 숭의 출신 박현숙 선생의 지도로 “구국결사대”를 조직해서 매일 구국 기도회를 갖고 ‘천황사진에 먹칠하기’와 ‘쓰개치마 벗기 운동’을 벌였다.

    * 1919년 03월 13일 전주3.1 만세 운동 때에 임영신, 김공순, 김신희, 최애경, 정복수, 김인애, 최요한나, 강정순, 함의선, 함연춘, 최금주, 송순의, 김순실, 정월초 등 “14인 결사대”가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3명 학생 구속 기소되었다.

     * 1930년 01월 24일 광주학생운동과 관련 가담 문유덕, 전순덕, 신애덕과 오원애, 김순길, 이준례, 진태순 등 ‘결사대’가 만세 시위를 이끌었고, 학생 39명이 구속되었다.

    * 1937년 10월 5일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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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전학생 옷차림(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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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장산 수학여행(1936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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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1회 졸업 사진

      

    * 1946. 11. 26 - 일제 패망으로 인문과 4년제 학교로 복교.

      * 1955. 04. 15 - 신학제에 따라 여고 1학년 1학급 설치

      * 1956. 05. 26 - 화산동 1가 187 에 교사 신축 이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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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전 여학교 본관 건물(1950년대 초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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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전 여학교 교사 전경(1949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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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돈 선교사, 인사례 여사 공적비

    현재 기전여대(옛 기전여고 자리) 교문 안쪽 언덕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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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돈은 1912년 내한하여 군산 영명학교와 전주 신흥학교 교장을 지냈고 대전 한남대를 세우고 초대 학장을 지냈다.

       인사례 여사는 광주 개척 선교사 벨의 딸로 태어나 1922년 인돈과 결혼하고 해방 후 기전여학교 교장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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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03. 03 - 효자동 3가 393 서부 신시가지 학교시대 시작함

     

    * 기전여학교는 1909년 ‘전목사기념여중학교’라고 불렀다. 이는 1908년 전주에서 별세한 전킨 목사를 기념해서 붙인 것인데 줄여서 ‘기전여학교’라 한 것이다.


    *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3가 39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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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1.01 17:17

    ◇ 김제금산교회 ◇



    * 김제 금산교회는 미국 남장로교 테이트(한국명: 최의덕) 선교사에 의해 1900년 설립되었다. 테이트 선교사와 조덕삼 장로 주도로 1908년 ㄱ 자형 한옥 교회를 건축하였다. 이 교회는 한국식과 서양식 교회의 특징을 결합시킨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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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자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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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덕삼 장로

     

    * 1909년 금산교회에서 처음으로 장로를 뽑을 때 아홉 살 아래인 머슴 이자익이 먼저 장로로 피택되었으나(1908년), 조덕삼(1910년 장로피택)은 머슴 이자익 장로와 잘 협조하여 교회를 섬겼다. 이자익 장로 피택 당시, 조덕삼은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집에 돌아와서는 주인과 머슴의 관계가 되고, 교회에 가서는 반대로 장로와 평신도의 관계가 되어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자기 직분을 다하였다는 것이다.

     

     * 조덕삼은 이자익이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금산교회 목사로 부임해 내려올 때도 그를 당회장 목사로 깍듯이 대접하였다. 자기 집 마부 출신이 목사가 되어 전라도 땅에서 크게 활약하는 것을 지켜보며 감사하였다.

     

    * 경남 남해 출신인 이자익 목사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목사가 되어 1915년 금산교회 2대 목사로 취임하였다. 이자익 목사는 후에 3회에 걸쳐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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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창기 강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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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단 앞에는 옛날 휘장을 쳐서 남녀 석을 구분했던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을 중심으로 앞쪽 모서리 기둥과 강단 뒤쪽 벽면 기둥에 휘장을 쳐서 남자 신도는 물론 강단의 목사도 여자 석을 볼 수 없게 하였다. 강단과 강대상도 남자 석을 향하고 있어 목사는 아예 여성 쪽을 보지도 못하게 했다. 휘장은 1930년대 들어서야 철거되었다.

     

    * 금산교회의 내부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북서쪽 모서리에 있는 5평정도의 강단은 2단으로 꾸며져, 결과적으로 3층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전래의 제단구조이면서 동시에 '뜰, 성소, 지성소'로 이루어지는 성막의 3중 구조를 상징하고 있다. 이렇듯 금산교회는 복음의 토착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결과를 가져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1908년 4월 3일 올렸던 상량문조차 남녀 석이 다르다. 남자석은 고린도후서 5:1-6절이 한문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여자 석 상량문은 순한글로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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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산교회는 강단 뒤쪽으로 목사들이 드나들던 조그마한 쪽문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몸을 숙여야 하는데, 목회자들은 이 문을 드나들면서 '겸손'을 배웠다고 한다. 

     

    * 조덕삼 장로는 사재를 털어 유광학교를 세워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으며 그의 아들 조영호, 손자 조세형(전 국회이원)이 대를 이어 장로로 섬겼다.

     

    * 조덕삼 장로는 돌아가시며 숨이 끊기기 직전까지 찬송가 525장 (주 믿는 형제들)을 4절 마지막 까지 다 부르면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하나님 보좌 앞 한 기도 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안에 하나라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동락 하는 중 위로를 나누네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안에 교통하면서 또 다시 만나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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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년 지어진 이 교회는 1997년 전라북도 문화재 136호로 지정되었다.

    - 현재는 주일학교 교육관으로 쓰이고 있다. -

     



    * 주소: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 29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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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따르미 2012.01.01 22:20

    안녕하세요 선생님 글올리신것을 이제보내요. 저는 청년부 박요한입니다.

    저 역시 전주출신이며, 무엇보다 신흥학교출신으로서 저희학교를 이렇게 반갑게 소개시켜주셔서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아무쪼록 각지의 선교지 답사에 글을 자세히 올려주셔서 감사드리며 다른 친구들에게도 소개시켜주고 권면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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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노희권) 2012.01.02 16:57

    박요한님!

    잘 다녀 오시고, 송구영신 예배에서 다짐하였던 그 약속(인도 현지 소식을 정기적으로 홈페이지에 올리겠다는 약속^^)을 기억하며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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