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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2011.04.25 17:26

마카베오서의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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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한 목사님의 부활절 설교 말씀을 듣고 부활의 의미를 곰씹던 중

이상길 형제님께서 올린 마카베오서 관련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 의도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는 한편

제 전공분야가 다뤄졌다는 사실에 나름 기분도 좋습니다.

다만 역사적 배경에 대한 좀더 정확한 이해에 도움이 될까해서

집필 중인 '로마시대 유대사'의 해당시기 관련 내용을 편집해서 올립니다.

 

**************************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은 세계사에 큰 분기점을 마련했다. 마케도니아 왕국을 기점으로 그리스 세계를 통합한 알렉산더는 전 333년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기 위한 대장정의 역사를 시작해 다음 해에는 팔레스티나를 거쳐 이집트를 정복했고,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페르시아 제국과 인도의 일부 지역까지 정복하는 성과를 올렸다. 323년 알렉산더가 죽자, 소위 디아도키라 불리는 후계자 장군들의 오랜 다툼으로 그의 제국은 크게 보아 본토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 조 시리아, 프톨레미 조 이집트의 세 제국으로 분열되었다. 셀레우코스 조 시리아가 소아시아 전역을 차지한 가장 큰 제국이었으며, 프톨레미 조 이집트는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팔레스티나를 포함한 지중해 동부 연안을 다스리게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사업으로 그리스 세계와 만족 세계를 구분하는 문화, 심리적 경계가 허물어졌다. …(중략)… 누구나 세계의 한 구성원이 되는 범세계주의가 강조되었다. 코이네(그리스어)는 이 새로운 세계를 하나로 묶는 공통의 언어로 새로운 세계의 신분증이 되었으며, 혼합의 결과로 종교 측면에서는 제우스, 말둑, 바알 신이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하나의 신으로 여겨졌다.

유대인들은 헬레니즘 세계의 일원이 될 것인지 유대인으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기로에 섰다. 2세기에 예루살렘도 헬레니즘화하기 시작했다(마카베오 상 1:1이하). 물론 이 경향은 이스라엘 전통을 고수하는 자들의 저항을 야기했으나(마카베오 상 2-4), 유대교의 헬레니즘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러한 점은 안드레아나 필립 같은 그리스 이름이나 바울을 사울로, 여호수아를 야손으로 부르는 그리스 식 이름 사용이 증가한 점으로도 알 수 있다. …(중략)…

디아도키 전쟁의 와중에서 전 301년부터 팔레스티나는 이집트 프톨레미 조 지배하에 떨어졌다. 그러나 팔레스티나는 이집트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프톨레미 조와 셀레우코스 조의 각축장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기원 전 200년에 셀레우코스 조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 3( 223-187)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안티오코스 3세는 유대인들의 종교 전통을 인정했다. …(중략)…

안티오코스 4세의 종교 박해

기원 전 175년 셀레우코스 4세의 뒤를 이은 안티오코스 4 세 에피파네스는 로마의 재정적 압박과 북부 변경의 불안, 내부 불안의 어려움 속에서도, 왕조를 부흥시키려는 욕심으로 이집트를 두 번이나 공격하여 팔레스티나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는 174년 사두개파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를 폐위하고 친 그리스주의자인 동생 야손을 대제사장에 임명했으나, 이집트가 팔레스티나를 재정복하려는 의도로 야손을 매수하자 170년 경 대제사장 가문 출신이 아닌 메넬라우스로 교체하고 169년에는 예루살렘에 들어가 신전을 약탈했다(마카베오 1:20-23; 마카베오 4:7-26). …(중략)…

168년 이집트를 공격한 안티오코스는 알렉산드리아시를 점령하는 성과를 올렸으나 시리아 왕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는 로마의 압력으로 철수해야 했다(6차 시리아 전쟁). 이때 팔레스티나에서는 안티오코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쫓겨났던 야손이 예루살렘에 되돌아오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나, 소문과 달리 이집트에서 철수한 안티오코스의 영향력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집트 편을 든 유대인들에 대한 응징이 뒤따랐으니, 이듬 해에 안티오코스는 외부의 위험을 막기 위해 전국민이 단합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제식과 관행의 헬레니즘화, 할례와 안식일 준수 금지 등 전통 의식 폐지를 골자로 하는 칙령을 공표하고, 예루살렘에 수비대를 배치했다(마카베오 상 1:41-57; 마카베오 하 5-6). …(중략)…

 

마카베오 반란과  하스몬 왕가

이러한 안티오코스 4세의 종교 박해에 대해, 이교 의식을 거부하고 순교를 택한 자들이 있었으며, 제사를 계속하고 사제직을 유지하기 위해 이집트로 피신한 자들도 있었다(엘레아자로의 순교와 아들 7명과 함께 순교한 여인: 마카베오 하 6:18-31; 6:7. 이집트로 피신한 오니아스에게 프톨레미 6세가 레온토폴리스의 유대신전 건축을 허락했다: pirpo p. 13). 그러나 무력으로 맞서려는 움직임도 있어서 전 166년 초 산악, 사막지대 게릴라전으로 무력 항쟁이 시작되었다.

해방 투쟁의 성격을 띤 반란은 모세 율법을 재천명하고, 신앙 전통을 회복하는데 목적을 두었고, 마타티아스와 아들 유다 마카베오가 주도하였다. 164년 유다는 이교도들이 차지한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아 12 25일 정화 및 재봉헌식을 가졌다. 이후 유대인들은 성전 정화를 기념하는 하누카(수전절, 10:22) 절기를 지키게 된다. 이들은 시리아 왕국의 허점, 즉 파르티아의 위협, 로마에 대한 외교적 입지 약화, 데메트리우스 계보와 안티오코스 계보 간의 오랜 내부 분쟁을 이용해 항전했다. 유다는 로마의 지원에 힘입어 일시적인 휴전을 이끌어 냈으며, 로마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협정을 체결했다.

160년 유다가 전사하자, 막내 동생 요나단이 뒤를 이었다. 그는 사마리아, 에그론, 욥바를 수중에 넣었고 팔레스티나 남쪽 해안에 위치한 그리스 도시까지 통치 지역을 확대해 나갔다. 요나단이 시리아 군의 음모로 살해되고 그의 형 시몬이 뒤를 이었다. 시몬 142년 시리아 왕 데메트리우스 2세와 동맹을 맺어 공납금과 부과금을 완전히 면제받아 실질적인 독립을 확보했으며, 로마와 동맹 관계를 갱신했다(142 로마 콘술 메텔루스는 프톨레미 이집트에 유대아는 우리의 오랜 우방이다. 유대아와 싸우거나 해를 입히지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각국에 이를 알리기로 결정했다 서한을 보낸다).

152년 초막절에 셀레우코스 왕국의 내분을 기회로 삼은 요나단이 스스로 대제사장직을 차지했고, 143년에는 시몬이 시리아 왕의 승인을 받아냈다. 140 9월 유대인들은 공식적으로 시몬과 후손에게 지도자(Nasi) 및 대제사장의 최고 전권을 공식적으로 부여했고 이로써 하스몬 왕가 시대가 열렸다(마카베오 14:42). 2세기 말-1세기 초에 이 가문은 공식적으로 왕 칭호를 사용했다. …(중략)… 67년 하스몬 왕가의 계승 투쟁에 개입한 폼페이우스가 유대 왕국을 공납국화함에 따라 유대왕국은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

 

간단히 말해 마카베오 서의 배경시대는

로마제국의 직접지배가 아니라

시리아 왕국과 이집트 왕국의 소아시아 패권다툼 기간입니다.

 

시리아 왕이 왜 유대인들을 박해했는지, 

특정시기의 유대왕국과 시리아 왕국, 로마 제국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 ?
    길벗 2011.04.25 22:13

    형제님! 이해에 도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로마시대 유대사'는 언제쯤 햇빛을 봅니까?

    기다려집니다.

  • ?
    이상길 2011.04.25 23:23

    아, 그 떄는 로마제국시대 때의 박해는 아니었군요.

    역사를 바르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 -> 페르시아/팔레스티나/이집트/인도일부 정복 ->후계자 다툼으로 마케도니아/셀레우코스 조 시리아/프톨레미 조 이집트의 세 제국으로 분열 -> '디아도키 전쟁’와중에 BC 301년부터 팔레스티나는 이집트 프톨레미 조 지배지가 됨 -> BC 200년에 셀레우코스 조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 3세(전 223-187)의 수중에 들어 감. 유대인들의 종교 전통을 인정 -> BC 175년부터 안티오코스 4세의 종교 박해 > 168년 이집트 공격, 로마 개입 압력, 안티오코스 본격적 유대인 종교 박해 탄압 ->유대인 저항 시작. 마카베오 주도 -> 로마 지원받아 휴전 및 로마에 사절단 파견하여 협정 체결-> BC160 마카베오 전사 ->요나단 계승. 지배 영토 확장 -> 시리아군 음모로 살해 당함 -> 친 시리아 권력 장악 -> 시리아 승인 받아 BC 140 유대인 시몬과 후손으로 하스몬 왕가 시대 열림 -> BC 67년 하스몬 왕가의 계승 투쟁에 개입한 폼페이우스가 유대 왕국을 공납국화함에 따라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됨.

     

    그러니까, 마카베오의 기록은 시리아왕 안티오크스가 이집트를 수중에 넣었으나 로마의 압력으로 철수한 후 그 뒤 끔찍한 보복으로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저항세력을 마카베오가 주도하며 그 잔학상을 남겼다고 보아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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