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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2015.04.16 19:35

후기) 사회적 고통과 기억의 공간

조회 수 3316 추천 수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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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문화강좌>를 마치고

 

   늦 봄 제주에 갔습니다. 올레길을 걸은 다음날 일찍 숙소 앞 해안길을 거닐러 나갔습니다. 아침빛에 일렁이는 푸른 바다에 이끌려 검은 바위들 사이로 내려갔다가 순간 밀려오는 파도에 놀라 허겁지겁 돌아 나왔습니다. 발끝을 적시던 그 작은 물결에도 가슴 쓸어내린 내가 낯설어졌습니다.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홀로 견뎠을 검고 찬 물빛이었습니다. 낭만적인 아침바다를 잃어버린 사람은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이번 강좌 사회적 고통과 기억의 공간을 함께 하며 국가와 시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상징을 다시 개인의 삶으로 한 올 한 올 다시 풀어내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서대문형무소와 서소문순교성지, 세월호 추모공간을 함께 걷는다는 것은 고문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 애국지사와 같은 거대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존재들의 상징을 부수고, 영혼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내는 일이었습니다. 해석의 상징성을 기억의 구체성으로 되돌리는 일이었다면 조금 거창한 말이 될까요.

 

   네 번의 토요일, 봄을 가로지르며 제가 만난 그들은 고문 피해자가 아니라 칠성대 위에서 긴 밤 돼지울음 소리 같은 끈적끈적한 비명을 들으며 죄 없는 동료의 이름을 꾸역꾸역 집어 삼켰던 구체적 살덩어리를 가진 한 남자였습니다.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고모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가다가 끌려가 전쟁의 지옥에서 말할 수 없이 참혹한 짐승의 먹이가 된 소녀였고, ‘위대한 독립투사가 아니라 고문으로 부러진 손가락을 지닌 채 일제의 부스러기들이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나라를 갈라먹는 모습을 한 평생 두 눈으로 보아야 했던 한 많은 한 국민으로 다가왔습니다. 현미경을 망원경으로 바꾸면 역사라고 쓰여 있고, 망원경을 현미경으로 바꾸면 슬픔으로 가득찬 개인의 삶이 쓰여 있습니다.

 

   처음 광주 망월동에 갔을 때를 기억합니다. 그 어마어마한 묘소들을 처음 보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광주는 어떻게 이 영혼들의 무게를 감당하며 버텨왔을까 먹먹했더랬지요. 그 순간부터 그 곳은 책으로만 보던 광주가 아니었습니다. 탯줄을 아직 잘라내지 못한 엄마와 아기, 두려움에 떨면서도 도청의 밤을 지킨 청년이 여전히 살고 있는 땅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때론 의아합니다. 왜 광주의 주검들 위에 태극기를 덮었고, 애국지사들은 이미 이름을 잃어버린 국가를 위해 제 목숨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찢겨진 몸의 상처를 꿰매며 조국으로 조국으로 되돌아오려 했을까요. 단 한명의 삶도 건져내지 못한 무능한 이 국가라는 상징 안으로 말입니다.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말처럼 304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304개 있었던 것입니다. 그 죽음과 연결된 수많은 가족과 동료까지 포함한다면 이 엄청난 주검들 앞에 국가의 침묵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느껴집니다.

    

   옆 동료는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자, ‘지겹다 그만하자. 그만하면 많이 했다.’ 불편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는 아이를 사교육 시장에 내몰지 않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고, 직원들에게 비타민을 챙겨주며 약 먹을 시간이다. 농담을 건네며 웃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악의 평범성과 같은 거창한 말을 끌어오지 않아도, 생각의 시간을 잠시라도 늦추면 내게도 당도할 일상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저라는 인간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여진 경비원 감축 표결에 대한 안내문을 읽으며 머릿속 계산기를 눌러보지 않았겠어요. 방금 현관에서 그 분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으면서 말이죠. 베트남의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 할머니, 전쟁에서 정말 두려운 것은 죽는 게 아니라 강간이었다고 말하는 콩고의 전쟁피해 여성들 이야기를 들으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피가 뒤섞여버린 고통을 느낍니다. 내 삶은 또 누군가의 노동, 죽음과 고통을 딛고 이 땅에 서있는 것일까요.

    

   전쟁과 여성박물관의 벽에 새겨진 위안부 할머니의 말씀들. “내가 바로 살아 있는 증거인데 일본정부는 왜 증거가 없다고 합니까?” “한국여성들 정신 차리시오. 이 역사를 잊으면 또 당합니다.” 라는 육성을 뼈 아프게 읽습니다. 아이들과 증거가 아직 바다에 있는데 왜 다 잊자고 합니까. 오늘 이 일을 잊으면 내일은 더 큰 비극의 괴물이 달려들겠지요. 테렌스 데 프레가 <생존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을 극한 상황을 견디게 한 것은 기록하고 증언하고자 하는 의지였다고 하지요. 우리가 이 모든 고통을 기억하는 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기록의 증언자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하지 않겠나 되뇌입니다. 성서에 기록된 그새벽 여인들처럼 두렵고 떨리지만 이내 단호함으로.

    

   제주의 흙냄새로, 마산의 열기로, 그리고 팽목항의 바닷 바람으로 다시 돌아온 4,

꽃피는 계절이면 그들의 삶은 고통의 공간을 지나 우리의 기억으로 매년 되돌아 오겠지요.

별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저편.jpg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 건너편으로 내가 사는 세상이 보입니다.)




길벗.png 

(함께 걸었던 길벗들 덕분에 위로 받았던 4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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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식 2015.04.17 07:28
    이건 너무 좋은 글이라 뼛속으로 새기겠습니다~ 말없이 느끼며 타인의 고통을 내것으로 여겼을 향미누님으로부터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함께 걸었던 곳곳을 다시금 되뇌입니다.
    향미누님의 백보에 저의 반보가 오히려 초라해집니다. 이밤 쉬이 잠들지 않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
    김근철 2015.04.17 10:38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같은 공간에 같이 있었으면서도 이렇듯 향미 자매님만의 깊은 생각을 이끌어 내 주시네요.
    더구나... 손수 그렸다는 삽화에 놀라움과 함께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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