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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2010.01.09 00:17

회개의 힘

조회 수 4575 추천 수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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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제게 빛이 되던 새길교회를 떠올리는 일이
고통스러워졌습니다.

종종 주일에 예배하기도 불편해졌습니다.

왜일까요?

누구와 크게 다툰 적도 없고
크게 상처를 주고 받은 기억도 없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새벽에 벌떡 일어나 엎드려 웁니다.
방안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탄식합니다.
어떡하면 좋으냐고. -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막化 되어가는 느낌 때문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양극화나
不通, 표독스러운 다툼의 기운,
자신은 쏙 빼놓고 남을 비판하는
독선과 아집, 히스테리의 여파가
이곳에서도 느껴지기 때문일까요?

졸부(猝富) 한국사회에서 풍기는
필연적 매연(煤燃) 때문일까요?

가끔 심장이 나뉜 듯 하고
비수에 찔리듯 아픈 것은
저의 과민한 신경증 탓이라고 해야할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거야. 공연히 문제 삼는 것으로 문제되지 말자.. ^^

곧 좋아질 거야.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횐데.

에잇, 이게 다, 참여적이지 못했던 내 탓이야!
'나나 잘 하세요~' ^^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고, 잘 참여하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잘 지켜봐야지.. 좋아질 거야..

맞아.. 좋아지는 것 같아.. ~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새벽에도 자다가 벌떡 깨어났습니다...

어찌해야하는 것일까요?

지난 5월 경, 온라인 상에서 이런 저런 답글도 나누고
오프 라인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하던 무렵,

'회개의 힘'이라는 글을 올리려다가 바로 내렸었습니다.

교만이 될까, 생뚱맞은 얘기다 될까 두려웠고,
우선 나부터 변해야 뭔 할 말이 있지.., 하는 반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호라 곤고한 자여, 뭔가 말한다는 게 문제 해결이나 화합 보다는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기 쉬운 법이니, - 걱정되어서이기도 했지요.
(공연히 오해만 낳을까 염려될 만큼 불통의 상황이 깊어 보였습니다.)

은혜의 단비를 간구합니다.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
두서 없이 얘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오래 전, 아마도 남의 집 T.V로 봤던 ^^
'소피의 선택'이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메릴 스트립이 아주 젊었을 때 주연을 맡았던 영화죠.

소피라는 여인은 나치 하, 아우슈비츠로 가는 길목에서
어린 아들과 딸 중 한 명만을 선택하라는 명을 받게 됩니다.
한 명만 살려주고 다른 한 명은 죽이겠다는 극적인 기로. -
얼른 선택하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는 거죠.

한 명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그녀는
큰 애, 아니 작은 애.. 아니 큰 애.. 아니 작은 애..
오락 가락 절규하다가(나치군은 그런 그녀를 조롱하듯 재미있어 합니다)
결국 한 명을 선택합니다..

어찌 어찌 그녀는 살아남았고
미국에 가서 어떤 남자(폭력남? 정신병자?.. 기억이 가물가물..)랑 살게 되었고,
나중엔.. 어떤, 한참 연하의 소설가 지망생?(이 청년이 이 영화의 화자(話者)역할을 담당하지요.
스토리는 이 청년의 시각에서 그려집니다. '슬픈 표정을 한 미스테리한 여인 소피.. 내가 만난 그녀는.. '
이런 식으로요)의 사랑을 받게 되지만, 그래서 도망까지 하지만..,
그녀는 다시 그 또라이남?에게 돌아가 결국 권총 동반자살에 함께 함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아마도 그녀는
사랑하는 자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운명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했던 게지요.

소피의 영혼은 그 선택의 순간에 이미 죽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치의 횡포에 의해. -

그 나치군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에겐 그저 일상 생활 속의 장난이거나 사소한 심술이었을지도 모르죠.
영화는 그것까지 추적해주진 않죠.

다만 소피의 슬프고도 창백한 주검. - 얼굴을 오래 보여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쯤 되면, 최인훈의 '광장'을 떠올리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남이냐 북이냐,
오가다
제 3국을 택하고,
행복해하며 미래에의 희망에 부푸는 듯 했으나, 제 3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갈매기 가족을 바라보다
투신 자살하고 마는 명준..

우리에겐
밀실도 필요하고 광장도 필요하다고 소설은 외쳤던가요?

분열되었다고 조국을(교회를) 떠날 것인가?

오오 주여, 곤고한 나를 가엾이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사
임하소서. -


*
언젠가부터 제게 떠오르는 화두는;

'아이덴티티(확실히 하기?)와 공공(公共)하기' 입니다.
(? 근데 당췌 이걸 선명하게 표현해낼 자신이 없네요.. -_-;;)

암튼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한데,
이게 정립되지 않고 헷갈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필요한 갈등에 사로잡히고
분열하게 된다는 생각..! -_-;;

(설명하기가 쉽지 않네요.. 두서 없어서 죄송합니다. )

아, 신음 소리, 신음 소리가 들립니다.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사람이
공적으로, 혹은 공동체에서 그걸 메꾸려할 때,
온갖 오해와 문제와 분란이 발생하기 쉬운데,

특히 교회에서는 주 안에서 자기를 죽이라고 하니
더 헷갈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기 다르게 창조하셨고,
그러한 나의 개별성과 탤런트는 소중한 것이죠.

나의 고유성은 최대한 살리고 나 자신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서면서 동시에
공공의 일을 의연하게 해낼 수 있어야할 텐데 말입니다.

물론 개인적 위치가 허약하다고 공적 자아가 허약한 건 아니죠.
사사로움에 연연하지 않고 공적인 일을 제대로 해내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아집(我執)의 연장선에서 공동체 일을 할 때,
빼어난 활약을 보여준다 해도, 그의 영향력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독이 되기 쉽습니다.

교회는 사회와 달리, 서로를 받아주는 가장 私的인 공간이면서,
또한 나를 낮추고 주님을 세우는 가장 公的인 자리이기도 하지요.

더구나 잘 가르쳐주는(? ^^) 목사 리더가 있는 교회와 달리
평신도 교회일 때,
소통의 기류가 헷갈리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사태들이
분출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나는 주인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n분의 1에 불과한, 수많은 교인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나서기도 어렵고 숨기도 어려운가 하면,
나서기도 쉽고 숨기도 쉬운
평신도 교회의 이 이중성의 함정에서,

누가 주님을 돕는 자요,
누가 주님을 방해하는 자이겠습니까?!

주님이 아시고..
사람들이 알고..

사실은 자신이 알아야겠지요.

그그제 설교 말씀에서는
사랑이 없으면 곱하기 0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회개 없는 사랑 또한,
아니, 사랑이라 부르는, 사랑이랍시고 행하는 그 무엇 역시
죄에 이르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오호라 참으로 곤고한 우리입니다.

지난 해에 올리려다 만 얘기 올립니다.
------------------------------------------------------------------------------

회개의 힘

20대 초반의 일이었을 겁니다. 아마 70년대 후반이었겠지요.

백팔번뇌의 무게가 저를 짓눌러 ^^
당시 저는 고개를 들기 힘들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냥 이대로 죽었으면. 숨이 끊어졌으면. -
하고 바랬습니다.
거두어 달라고. 고통없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나는 못 살겠다고. 일상 속에서 아마 수천 수만 번을 빌고 또 빌었을 겁니다.

아마 속으로는(神에게;)

      보십시오. 내가 죄 없이 가나이다.
      이것이 당신 역사란 말이지요? 꼴 좋습니다..
      하! 정말 웃기는군요. 말도 안되는 세상!..
      아, 빨리 데려 가. 제발, 제발.. 당신 실수잖아.

뭐 이런.. -_-;;

그러던 어느 날,
밤새 폭우가 쏟아지고 광풍이 불고 천둥 번개가 치는 밤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 천둥 번개 폭우가 등장하는 걸 보며,
그냥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상투적 장치인 줄 알았는데, 제 경우, 실제로, 드문 신비 체험은 모두 폭우 쏟아지는 날에.. ^_^;;)

잠을 자고 있었는데, 뭔가가 철썩! 찾아왔습니다.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따귀 맞듯이'라고 해야할지, '벼락 맞듯이'라고 해야할지..
뭔가가 버럭! 제게 임했고(저를 때렸고?) 저는 자다가 그야말로 벌떡 일어나면서 동시에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동시에 '토하듯이' 회개가 터져 나오면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
살아온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깨는 것= 임하는 것= 고꾸라지는 것= 잘못이 환히 보이는 것= 회개를 토해내는 것.이 한꺼번에. 동시에.

제 잘못들이 낱낱이 보였습니다. (인식되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
저는 저의 죄(잘못)를 하나 하나 빠짐없이 뉘우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제가 원하고 안 하고와 상관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타력신앙'이라는 말을 얼핏 듣긴 했지만,
저로선 전혀 관심없는 의미였고.. 정말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습니다.)

방구석에서, 가난한 집 맏딸로 가사일이나 도우며 살아온 스무살짜리 여자 애가
죄를 지었으면 뭐 얼마나 지었을까요?

그러나 회개할 게 끝없을 듯 꾸역꾸역 나왔습니다.
'행위'라기 보다는 '생각', '자세', '판단', '시각' ... 같은 것이었습니다.

대체로 '교만의 죄'였습니다.
(저는 그 전에 '교만'이라는 단어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건 그저 책에 나오는 말이고.. 제가 교만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자체를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이리 저리 치이고 두들겨 맞고 능멸 당해온 것 밖에 없으니 난 '억울한 사람'일 뿐이고..
교만은 적어도 어느 정도 힘 있는 자의 것이지 어찌?.. ^%$#@.. ;;

그러나 남녀노소 지위고하 힘 여부 상관없이,
교만은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죄성(罪性)인가 봅니다.
'참된 앎',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어느 날 복도 끝에서(어릴 때, 실향민들 모여 사는 일본식 목조건물(유곽자리)에 살았었거든요. 비좁은 단칸방 하나에 한 가족씩..)
**이네 엄마를 보며 깔보는 마음을 가졌던 일, ##에 대해 심판하는 마음을 가졌던 일,
00이가 차라리 잘못되었으면. 했던 일..
따위가 낱낱이 떠오르며 계속 회개가 터져 나왔습니다.

스쳐 지나갔던 사소한 생각까지 환하게 떠오르니 미칠 노릇이지요.

이 모든 회개가 내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토하듯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가 계속되면서
천근만근의 무게를 지니고 있던 제 몸과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 끝났다 싶어 지쳐 잠이 들었다가
한번 더 와악.. 하며 일어나
남아있는 회개 분량의? 기도를 더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_^;;

다음날 아침.
태양은, 세상은, 예전 그대로이되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편으론 설레고 기쁘고
(그 전날까지 절 이글이글 끓는 무쇠솥처럼 짓누르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홀가분함!
무엇보다도, 내게 고통을 주던 대상을 '저절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감격과 기쁨!!
-> 물론 제 '한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기 힘든 제 학습, 경험, 능력의 한계이지, 방향성을 잃진 않았지요.)

한편으론 두려웠습니다.

저는 제가 엄청난 걸 겪었기 때문에
(전 그런 정도 강도(强度)의 경험이란 것이 제 생애에 자주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땐 몰랐어요.
그냥 이제 난 엄청난 세계를 알게 되었으니, 아이구야 큰일났다.. 했죠..)
목사나 전도사나 무당이나.. 암튼 엄청 특수한 신분이나 사역을 요구 받을까봐 겁이 났고,
사람들이 알았다가는 어디 산속 신학교? 같은 곳으로 끌고갈까봐(?)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데, 그땐 그랬어요.. ^^)
(한편으로는 어쩐지 누설하지 않는 게 도리일 것 같아?)
남에게 말 한 마디 못했죠.

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게 해달라고.
착하게 살겠다고. 빌고 또 빌었던 것 같습니다.. ^^

그 후 죽음에서 ->생명으로.. ^^
방향을 틀고
그럭저럭 살아오고 있지만

지금도 번잡한 세상사에서 돌아와
홀로 있는 시간.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정신이 버쩍 들고
내가 처해있는 시공간이 달라지면서
세상살이와 나의 전후좌우를 둘러보게 되는
바탕 자리가 되곤 합니다.

저는 우리 새길교회 - 믿음의 형제 자매님 처소에도,
경우가 각각 다른 대로
'회개의 자리'가
근간이 되어야한다고 믿습니다.

더욱이 갈등과 분쟁과 오류의 얼룩을 이기고
생명과 정의와 소통과 사랑의 새 역사를 써가려할 때

먼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할 것입니다.

내가 바뀌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바뀌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회개가 찾아 오기를,
우리가 회개를 초대하기를,
회개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다른 시각으로 나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나를 이기고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옳다는 교만,

-세상을 섬기면서,
똑같은 영광을 교회로 옮겨와 누리려고 했던
욕망과 이중성,

-몸은 헌신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따진 허황함,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남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음,

-나의 모자라는 잣대로 주님의 교회를 해석하여
좌지우지하려한 어리석음과 횡포,

-오해,

-교회가 마땅히 추구해야할 비젼을 가지지도,
동참하지도 못했던 유약함,

-비겁함과 이기심..

(저의 눈 역시 어둡고 발길도 둔하여 일일이 알 길 없으나
주님께서는 각자가 처한 난제들을 아실 것이니

각자 마음 속에 있는
오랜 응어리,
아픔,
뒤틀린 습관,
불편한 진실을

당신 앞에 내어놓게 하시고

무감각..의 죄로부터
우리를 구하사

회개하게 하여주시길 간구합니다.)

                                                                           2009. 5월
------------------------------------------------------------------------------
*
나 역시 은혜를 빚진 자라
다만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에게 자비 베푸사
우리에게 임하소서.

새해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

새롭게 되는
우리

새길교회이기를 빕니다.

                                                                         2010. 1월

  • ?
    바람소리 2010.01.09 00:43
    글을 천천히 읽어 가다가
    점점 속도가 더해 갑니다.
    이 글이 내가 다 읽기 전에 사라질까 염려하듯...

    요즘
    새길에 대한 제 생각이 일부 반영되어서 일까요...

    연말 연초
    인근 교회와 친지들의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사이 저는 기존교회의 외계인이 되어버렸더군요...

    그들의 용어
    그들이 하는 말이 전혀 와 닿지 않는...

    오히려
    추운 겨울 탑을 돌며
    기도문만 반복하는 저를 봅니다...
  • ?
    임병인 2010.01.10 23:05
    .....사회적인 규칙에 의해 규정된 범죄가 아닌 개인의 습관이나 고집, 성격, 행동등이 세월을 통해 굳어져버린 '죄아닌 죄'의 습성들을 회걔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죠..
  • ?
    김문음 2010.01.11 21:23
    그러게요.. ^_^;;
  • ?
    정경일 2010.01.12 03:49
    "회개의 힘"을 공동체 안에서 나눌 수 있게 한 "믿음의 힘," "사랑의 힘"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저 스스로를 경계하고 살피게 하는 지침으로 삼을게요. 평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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