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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는 바, 믿는 방식이 서로 다름은 좋은 것임

  * 글이 너무 길어져서, 후반부는 댓글 1에 이어서 올렸습니다.
  **  첨부 파일 '믿는바-믿는방식5.hwp' 에 글 전체가 끊기지 않고 모두 올려져 있으니
        원하시면 이 파일을 다운 받아서 보시기를 **
----------------------------------------------

<1. 머리말>


그동안의 여러 가지 교회 밖의 정치사회 상황들에서

그리고 교회 내의 여러 상황과 이 웹에 올려지는 글들에서

우리는 하나의 별로 달갑지 않은 상황을 자주 마주쳐야 하였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나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것만이 옳다는 주장이, 그리고

다른 이들의 생각이, 믿는 바가, 믿는 방식이, 행동하는 방식이

틀렸다는 일방적인 불신의 표현들이

 

말 하는 사람의

성숙된 인격에 의하여, 성숙된 믿음에 의하여

가다듬어지거나 여과되지 않은 채,

공개적으로 강하게 표출되어


상대방 사람들이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바,

믿는 바, 믿는 방식의

좋음을

밑바닥부터 흔들어 놓는 일들이다


이따금 이런 행동은

상대방의 인격, 감정을 심하게 건드리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저 자신도

그러한 상대방의 믿는바, 믿는 방식, 생각하는 바를

흔들어 놓는 좋지 않은 일을

과거에 많이 하였고

지금의 이 글도 그런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글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이야기를 말하고자 한다.


-------------------------------

<2. 이야기1>


이미 지난 3월 8일에 올렸던 글에서 언급한 바처럼

저는 지난 40 여년을 인간의 지적 능력인 인지에 대하여 연구하여 왔습니다.

인간의 주의, 언어, 사고, 감정들이 일어나고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탐구하여 왔습니다.


그러한 탐구 결과로 얻어진 결론은

인간은 비합리적, 비이성적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진화과정에서 발달된 적응 메커니즘입니다)

아무리 감정의 개입을 배제하려 해도

나의 모든 생각, 지식, 믿는 바, 믿는 방식,

그러한 생각, 믿음을  표출하는 행동,

그리고 상대방을 이분법적으로 범주화하여 옳지 못한 사람들로 묶어 버리는

나의 단정적 판단과 그의 실천적 행동의 바탕에는

자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특정 편향된 감정, 정서들이

저 아래 저변에 단단히, 늘 깔려 있다는

그렇기에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

우리가 옳다고 행하는 바, 믿는 방식은

절대적인 참이, 옳음이 아닐 수 있다는


즉, 내가

나의 확신에 찬 생각이

(아무리 최근의 학문적 지식을 동원, 연결하여 추론한 것이라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다른 이의 믿음, 믿는 바, 믿는 방식에 대하여

이야기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임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지금의 저도 그런 부류의 한 사람인데 행동하는

지금의 저의 말도 그런 부류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


<3. 이야기 2>


제가 정치사회 일반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넘어서

종교, 믿음의 내용과 믿음을 행하는 방식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기까지에는

저 나름대로의 많은 경험, 방황, 회의, 생각의 가다듬음을 거쳐 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야기한다면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습니다.

저의 할아버님은 이미 1910년대에 전도사로서 교회도 세우시고, 전도를 하셨던 분이고

저의 아버님은 목사가 아닌 장로의 신분으로

교회의 지방회의 위촉을 받아 교회를 네 곳이나 개척하신 분입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님을 따라서 가서 교인들의 집 안 방에서, 마루에서

작은 규모로 예배보았던 그 모임들이 커다란 건물의 교회로 발전하여 있음을 보고는

감회에 젖곤 합니다.


교회의 중등부 학생회 회장까지 지낸 저는

고등부 때부터 회의하고 방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회의론자, 불가지론자, 불신자, 그저 조금만 믿는 자, 회개한자 등의 범주를 오락가락하기

몇 십 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정년은퇴를 한달 앞둔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동안 이 새길교회에 와서, 특히 일요 신학강좌를 들으면서

저의 신앙, 아니 믿는 바, 믿는 방식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가다듬어지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


<4. 이야기 3>


저의 믿는 바, 믿는 방식을 비교적 성숙하게 하고 안정적이 되게 한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 모임이 있습니다.


김용준 교수님이 시작하신 ‘과학과 종교’ 독회 모임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어서

신학, 종교, 철학, 종교 관련 과학 일반에 대한

외서, 국내 도서들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이모임에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그러면서도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신학자, 종교학자, 철학자, 자연과학자, 인문사회과학자, 공학자,

저술가, 과학 관련 기관에 종사하는 분 등이 참여합니다.

배경이 개신교, 성공회, 카톨릭, 불교의 분들이 있는가 하면 완전 불신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태신앙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이 모임에서는 국내 교계에서는 감히 말도 꺼내지 못할

주제, 생각, 신념, 종교적 방식들에 대하여 자유롭게 토론 합니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젊은 신학자, 종교학자들은

자연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교수)처럼

자주 해외의, 국내의 종교-신학-과학 관련 학회에 참석하며, 논문도 발표하며

최신의 종교, 신학 논의 주제들에 대한 최근 관점들, 생각들을

갖고 와서 소개하기도 합니다.


국내 보수주의 전통의 교단의 목사님들이 주장하시는

것들의 많은 것들이 이미 많은 해외의 신학자, 종교학자들에 의해

버려지고, 거론조차 되지 않는 낡은 생각, 관점인 것이 많음이

이 모임에 참여하는 신학자, 종교학자들에 의해 거듭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종교-과학과 관련된 최근의 책들을

상당히는 국내에서 번역서가 출간되기 이전에

어떤 경우에는 해외출판이 되기도 전에

또 어떤 경우는 국내 출판이 되어 자리를 잡은 도서들을

선택하여 읽습니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과의 격의없는 이야기, 토론을 통하여

그리고 새길교회의 예전의 신학강좌를 통하여

새길 교회 형제자매님들과의 자유스런 이야기를 통하여

신학, 종교학, 과학, 동양철학사상서 등을 통하여

그리고 인간의 인지와 감정에 대한 저의 인지심리학 탐구를 통하여


적어도 저는 저의 믿는 바, 믿는 방식이

비록 아직도 대단히 부족하지만

저의 수준에서 다소 가다듬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새길교회에

그리고 이 과학과종교 독회 모임에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


<5. 이야기 4. >


그런데 제가 그런 빚, 아니 큰 도움을 받았던 새길교회가


형제자매들이 각자 자신의 믿는 바, 믿는 방식의

옳음을, 그리고

다른 이들의 믿는 바, 믿는 방식의 틀림을

(신앙뿐 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입장을 포함하여)

공개적으로 강하게 주장하며

자기의 입장을 다른 이들이 딸아 올 것을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오프라인 이야기들이

온라인 글들이 자주 등장하고


이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교회와 교인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갈등과 거리둠을 초래하고

그 파장의 심각성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할 때에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리고

이런 갈등과 멀어짐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에

작은 힘이라도 일조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소 때 늦은 감이 있지만

그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여러 달 병치례를 하여야 하는 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님임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6. 이야기 5>  ==>  글이 너무 길어져서, 올릴 수 없기에 댓글 1에
                     이야기 5를 이어서 올렸습니다. ==>

  • ?
    이정모 2009.08.02 08:25

    <6. 이야기 5>

    제가 60대 중반이 된 지금 시점에서
    저의 일생 중에 가장 크게 후회를 하고 있는 일은

    어쭙지않은 저의 20대의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저의 어머님에게
    삶의 몇십년을 전통적인 기독신앙 속에서 믿음의 삶 속에서
    그 신앙을 따라 착실하게 살아오시며 교회에 봉사하신
    저의 어머님에게
    더구나 두세 해 후에 곧 마취의료 사고로 돌아가실 저의 어머님에게
    어쭙지않은 저의 회의적인 생각을 강하게 말씀드려서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회의의 여울을 스쳐 가셔야 하였을 일입니다.

    제가 무엇을 안다고
    어머님에게 조금이라도 일말의 회의의 순간을 드렸을까 하고 생각한다면불효자식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절히 듭니다.

    저에게는 가장 큰 회한의 일입니다.
    그 일을 생각할 때면 눈가가 젖어 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

    <7. 이야기 6 >

    오래 전에 토론실에 글을 올리며
    기독교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며 산골에 사는 할머니
    매일 마을 입구 성황당에서 맑은 물을 떠 올리고
    자기 나름대로 가족을 위하여
    자기 식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할머니의 경우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분의 기도, 믿음은
    그 나름대로 진실한 것이고 우리가 인정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른 지식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믿는 바, 믿는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믿음, 믿는 바, 믿는 방식은
    그 나름대로 소중한 것입니다
    단순히 믿음, 믿는 방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전체가 반영된 믿음, 믿는 바, 믿든 방식,
    달리 어쩔 수 없이 그러한
    그의 삶의, 생명의 표현입니다.

    그것을
    제가 저의 어머님에게 한 것처럼
    당신의 믿음이, 믿는 바가, 믿는 방식이 틀렸고
    나의 생각, 믿는 바, 믿는 방식이 옳다 라는 식으로
    주장, 강변, 설득, 압력을 넣는다는 것은
    어릴 때의 저처럼 무엇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행동 같습니다.
    -------------------------------

    <8. 이야기 7>

    그러하기에
    - 과거의 새길교회의 신학강좌에서 제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과학과종교 독회 모임의 여러 신학자들, 종교학자들, 기독교 이외의 신자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제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저의 전공분야인 인간의 인지와 감정 과정에 대한 탐구 결과에 의하면,
    - 종교, 인지 관련 서양, 동양의 사상을 전개한 책들에 의하면,
    - 새길교회의 형제자매님들과 나눈 이야기에 의하면,- 그리고 새길교회의 여러분들과 개인적, 인간적, 정서적 사괴임에 의하면,

    우리는 나의 믿음이, 나의 믿는 바가, 나의 믿는 방식이,
    (나의 정치사회적 관점이나 행동성향을 포함하여)
    옳고,
    다른 이들의 생각은 틀렸다
    다른 이들의 믿는 방식, 행동 양식은 틀렸다고
    말 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도
    기도 개념의 본질도
    신앙의 본질도
    구원의 의미도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고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믿음은
    기도는
    각자의 삶의 전체가 반영된
    (자기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식, 양식입니다.

    나의 삶이, 나의 살아가는 방식이
    당신의 삶, 살아가는 방식, 믿음, 믿음의 방식보다
    더 옳다, 더 좋다
    라는 말을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

    <9. 이야기 8>

    어느 시골 마을에서
    새벽마다 성황당에서 가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할머니를 떠 올려봅니다.

    그 분의 기도는
    그 분의 믿는 바는
    그 분의 믿는 방식은
    그 분의 삶은

    진솔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다른 이의 믿음, 믿는 바, 믿는 방식에 대하여
    소중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포용하는 것이
    작은 믿음이라도 지니고 있고
    다른 이를 생각하며 믿을 줄 아는
    새길인이 취할 도리인 것 같습니다

    나는
    다른 이의
    믿음, 믿는 바, 믿는 방식에
    회의를 던져
    그것을 흔들어 놓을 자격이
    그만한 지식도, 생각의 깊음도,
    삶과 생명에 대한 연륜도, 참 이해도

    없습니다.

    우리의 형제와 자매라고 생각하는
    다른 이의 믿음에 대하여

    그 믿음이, 믿는 방식이
    생명처럼 소중하기에

    우리는
    그 믿음에 대하여,
    그 믿는 바에 대하여
    그 믿는 방식에 대하여

    한 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존중하며 떠 받들어야 합니다.

    흩으러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형제, 자매가 서로에게
    한 생명이 다른 생명에게
    할 수 있는
    삶의 예의이고믿음의 길입니다.

    -------------------------------

    <10. 이야기 9>

    이상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이
    바로
    사실은 저의 부족한 생각, 행위를 대상으로 적용되는
    저를 비판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순적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저 자신은 아닌양
    이야기를 전개한
    그 점 사과드립니다.

    보다 화목한
    보다 너른 이해와 앎과 믿음의

    진정한 자매, 형제들의 만남이 이어지는
    새길 공동체를 그려 봅니다


    - 2009년 8월의 첫 주일 아침에-
    - 이정모 -
  • ?
    조성희 2009.08.02 08:52
    "보다 화목한
    보다 너른 이해와 앎과 믿음의
    진정한 자매, 형제들의 만남이 이어지는
    새길 공동체를 그려 봅니다"
    ..
    오랫만에 새길 홈피에 들어왔습니다.
    들어 오면서, 참 오랫동안 홈피에서 대화하는 습관이 없어진
    저를 발견했어요.
    마음에 기쁨이 넘치면 넘치는 대로, 근심 걱정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이 공간에서 한동안 침묵하고 있었던
    저를 발견했습니다.
    전 바쁘다는 핑계로 침묵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반가운 글이 있네요.

    오랫만에 올라온 선생님 글을 다시 읽으니,
    선생님이 오래 전부터 몸으로 보여주셨던
    '타인에게 민감하기, 그리고 자신에게 철저하기'
    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
  • ?
    윤진수 2009.08.02 21:33
    이정모 선생님
    그동안 자주 뵙지 못하다가 오늘 뵙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 동안 건강이 나쁘셨던 것은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해 주신 말씀 정말 공감할 수 있고, 또 지금 우리 교회에 정말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
    김덕년 2009.08.02 23:25
    이정모 선생님
    오늘 우연히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담담하고 진솔한 선생님의 자기고백적 용기에 대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저도 종교와 과학모임, 새길 모두 좋아합니다. 선생님의 육체적 매임에 대하여 도리어 저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시는 모습, 보여주심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는 가운데 쾌유하시고 지속적인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 ?
    김은배 2009.08.08 03:37
    이정모 선생님
    내가 가는 믿음의 길이,
    믿음의 방식이 다른사람에게 덕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종종 마음이 무거울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작년부터 거리를 뛰면서 그랬습니다

    가끔 위축되면서,
    그래도 거기서
    그들의 아픔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시간들이였기에...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두웠던 마음의 짐이
    홀가분하게 벗겨지고 담대한 마음이 생기는군요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
    Jumberlly 2014.01.24 15:29
    %file-d:\projects\GSA-20140114\ArticleSummary\c2.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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