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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단상 / 김규항


한 사회를 끝장내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무엇일까. 역사 속에서 실행된 적극적인 방법은 학살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또한 학살만으로 한 사회를 끝장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히틀러는 유대인을 박멸하기 위해 가스실까지 동원했지만 지금 유대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없던 나라까지 만들어 죄없는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학살하고 있지 않은가? 제노사이드는 유대인의 숫자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결속력은 오히려 더 강화시켰다.


한 사회를 끝장내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바로 그 사회 성원들의 결속력을 파괴하는 것, 즉 모든 사람을 오로지 나만 아는 인간으로 만들어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그 사회는 설사 지금 제 아무리 휘황하다 해도 이미 끝장난 사회다. 인류 역사에서 지배계급에 굴종하는 인간을 길러낸다거나 국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은 존재 했다. 그러나 어떤 가치관에서든 사회적 결속력을 거스르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이 이루어진 경우는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이젠 엄연히 존재한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다.


오늘 한국이 절체절명의 사회인 건 물론 모든 사람이 말하듯 경제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 사회가 아이들을 '나쁜 인간'으로 길러내는 일에 이념과 계급을 불문하고 온힘을 모으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은 아이들을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목표로 삼으며, 소박함의 아름다움과 정신적 충만을 우습게 여기는 인간으로 키우는 걸 교육이라 믿는 사회이며, 어떻게 하면 그런 교육을 더 효율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걸 교육문제라 말하는 사회다.


그리고 그 아귀다툼의 중심에 이른바 학원이 있다. 한국에서도 본디 학원은 정규교육기관인 학교를 보조하는 교육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에서 사람 꼴을 갖추는 이런저런 덕목과 가치들을 배우는 일이 사라지고, 국수사과니 영어니 하는 학과 점수가 유일하고 전적인 가치가 되면서 학원은 학교를 제치고 가장 주요한 교육기관이 되었다. 한국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일반학교가 어떻고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와의 격차가 어떻고 하는 논란들은 실은 다 그냥 겉치레 말들이다. 학교보다 주요한 교육기관으로서 학원은 이미 지불하는 금액에 따라 엄격하게 서열화되어 있으며 누구도 그 '금액에 따른 격차'를 항의하지 않는다.


학원의 권위는 보수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 이를테면 이명박을 지지하는 조중동 애독자에 국한하지 않는다. 진보적이라는 사람, 심지어 진보적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한다는 사람들도 감히 제 아이를 학원에서 자유롭게 하진 못한다. 광장에서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고 외치던 사람들도 자정이 되면 눈동자가 풀려 휴대폰으로 아이가 학원에 다녀왔는지 확인한다. 오늘 외국자본 투자까지 들어오는 거대한 학원 산업의 주인공들은 모조리 '개혁적인' 386들이다.


그리하여 오늘 한국에서 학원은 단지 학원이 아니다. 학원은 오늘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는 사회와 우리의 인간성을 망가트리는 자본의 가치관의 결정체이자, 마몬의 성전이다. 학원의 존재를 부인하는 노력은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는 사회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학원을 없애자.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학교에서 공부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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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회복 / 김규항


오늘 한국의 부모들은 대학졸업장이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물론 여기에서 '인생의 질'은 전적으로 경제적 기준에 의한 것이다. 간혹 '경제적 기준이 인생의 질을 결정하는 기준일 수 있는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역시 제 아이의 교육문제에서는 그런 기준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들 말한다. "잘못된 건 알지만 현실이..." 그런데 그 현실주의는, 오늘 한국의 부모들이 입술을 깨물며 다짐하는 그 현실주의는 정말 현실적일까?


지금 아이들이 대략 한 해에 60만 명이다. 대학정원이 늘어나서 안전하게만 지원하면 대학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인생의 질'과 관련지어 유의미하고 즉각적인 효력을 갖는 대학과 학과는 그 극히 일부다. 서울대의 일부, 연고대의 더 적은 일부, 그리고 몇몇 대학의 그보다 더 적은 일부가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걸 다 해서 3만 명이라고 해보자. 60만 명 가운데 3만 명이면 5퍼센트다.


그런데 그 3만 명이 전국에서 고루 나오는 건 아니다. 올해 연고대 인문계열 신입생 가운데 외고 출신이 40퍼센트를 넘겼다는데, 이런저런 특목고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로 본다면 지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이면 그 3만 명의 적어도 절반 이상은 특정 지역 혹은 특목고 출신이 차지할 것이다. 결국 보통의 아이들이 대학입시를 통해 유의미하고 즉각적인 '인생의 질'을 확보할 확률은 2.5퍼센트 이하인 셈이다.


2.5퍼센트 이하의 가능성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살 가능성이 2.5퍼센트 이하입니다."라고 말할 때, 혹은 "살지 못할 확률이 97.5퍼센트 이상입니다."라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그런 가능성을 두고 맘껏 뛰어놀아야 할 초등학교 적부터 감옥의 수인들처럼 학원을 돌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부모들은 줄잡아 10~20년을 잔업특근에 메이고 노래방 도우미까지 해가며 아이들 '옥바라지'를 하며 사는 게 과연 현실적일까?


비슷한 이야기로, 한국의 직업이 대략 1만개다.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1만개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오늘 한국의 부모들이 제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생각하는 직업은 몇 개인가? 10개? 기껏해야 20개 안쪽이다. 1만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아이들에게 20개의 직업만을 생각하며 몰아붙이는 부모들을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오히려 9,980 가지 직업을 갖고 살아갈 아이들을 인생의 낙오자로 만드는 사람들이 아닐까?


오늘 한국의 부모들은 너나없이 교육문제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태도를 가진다고 믿지만 실은 현실이 주는 공포와 불안, 즉 '이런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내 새끼가 도태되면 어쩌나' 하는 공포와 불안에 짓눌려, 최소한의 계산도 못한 채 아이들과 자신의 소중한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이 지옥이 지나면 행복한 미래가 도래할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지금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줄 모른다.


우리는 이 지옥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 출발은 우리가 현실주의라는 이름의 몽상을 버리고 현실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이가 대학을 갈 수도 있지만, 가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다. 아이가 제 재능과 적성을 일찌감치 발견하여 대학을 가지 않고도 자존감을 유지하며 진정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게 되겠냐고? 왜 안 되는가? 2.5퍼센트의 가능성이 97.5퍼센트의 가능성으로 바뀌는데, 20개의 직업에 대한 집착이 자그마치 9,980개의 선택으로 바뀌는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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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정은 2009.05.18 08:26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소한의 계산'이라도 '제대로' 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 겠지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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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경 2009.05.18 13:03
    맘이 많이 아프네요.
    전 제 아이들이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자신과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인간상을 꿈꿉니다.
    '좋은부모' '좋은교사' 참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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