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조회 수 2465 추천 수 0 댓글 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박찬욱 영화, 무서워요.. ^^)

이 글은 그럴싸하네요.

길 없는 길을 가야하는 운명.

*******

누구냐 넌? 영화 <박쥐>가 묻는다

영화 여행 2009/05/05 18:02 꺄르르


누구냐 넌, 영화 <올드 보이>에서 오대수가 소리치듯 이 물음을 자기에게 던졌을 때, 내가 누구인지 자신에게 얘기할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요. 너무 평범하기에 의식하지 않지만 파고들면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사람’입니다.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다가 죽게 되는 우리네 삶, 사람으로서 살지만 사람이 뭔지는 잘 모릅니다.


사람이 뭔지 평생 고민해야 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저마다 사람에 대한 ‘잠정 결론’을 갖고 살아가죠. 그것이 천사든 악마든. 사람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사람으로서 사는 게 아니지요. 사람이 뭔지 알아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풀리는데, 사람을 모르니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숨을 쉬다가 사라지는 무엇’밖에 되지 못하는 겁니다.


밥벌이 핑계와 세파에 쩐 나머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거나 억누르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은 끊임없이 솟아오르죠. 이에 대한 답은 어느 한 사람이나 종교가 독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풀어야 하고 알 수 있는 ‘열린 진리’니까요. 모든 사람은 사람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자기를 들여다봐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죠.


자신의 한계에 괴로워하다가 하던 사제, 흡혈귀가 되어 친구의 아내를 욕망하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사람은 스스로를 보지 못합니다. 눈으로 세상 풍경을 바라볼 수 있지만 자신의 얼굴을 볼 수는 없죠. 그렇기에 거울이 필요합니다. 거울은 자신의 크기밖에 보여주지 못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자기 얼굴을 돌아보게 하죠. 영화 <박쥐>는 사람을 비추는 ‘박찬욱표 거울’입니다. 그가 담은 ‘사람의 얼굴’은 어떤 표정일까요.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걸 돕겠다는 마음으로 신부가 된 상현(송강호)은 죽어가는 환자를 그냥 바라만 보아야 하는 자신에 진저리를 칩니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어주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에 괴로워하던 그는 위험한 실험에 자원을 합니다. 스스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백신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는 실험체가 된 것이죠.


인류 번영과 의학 발전을 위해 예수의 삶을 따르겠다며 상현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고 치료가 되지 못한 채 죽습니다. 그러나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 받아 놀라운 능력을 지닌 흡혈귀로 다시 살아납니다. 가뿐히 10m는 날 수 있고 다쳐도 재생되는 몸이 되었으며, 오감이 극도로 발달됩니다. 더구나 병든 자들을 고치기까지 합니다. 마치 예수처럼.


상현은 ‘붕대를 감은 성자’라고 불리나 스스로 자기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죠. 그러던 어느 날 종양이 생겨 병원에 입원한 어릴 적 친구 강우(신하균)와 그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나게 됩니다. 친구를 위해 기도를 드려주자 종양은 놀랍게도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고 상현은 강우네 집으로 초대받게 됩니다.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주택에서 한국 전통옷을 팔면서 밤에는 보드카를 마시고 마작을 하는 ‘행복한복집’이건만 정작 태주는 행복하지도 복도 없어 보이네요. 상현은 시어머니 라여사(김해숙)와 강우에게 학대를 받는 태주를 보고 욕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태주 역시 다른 삶을 꿈꾸며 상현에게 다가가고 둘은 ‘쾌락의 물살’로 뛰어듭니다. 그 쾌락에 휩쓸린 두 사람은 어디로 갈까요?


사람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욕망, 성직자와 흡혈귀를 통해 그 심리싸움을 그려내다


구원이란 저 하늘 너머에 있어서 죽은 뒤에 가는 ‘휴양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깨어있음이죠. 어제에 대한 후회와 앞날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통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지요. 두려움과 외로움, 허무함에 이리 치이고 저리 채이는 사람들의 삶은 메우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빈 구멍이니까요.


예수를 따른다는 상현 역시 그런 감정에 흔들리는 보통 사람일 뿐이죠. 자살은 ‘사탄에 대한 순교’라고 얘기하던 상현이지만 그 역시 바이러스 실험에 참여하면서 순교라는 이름으로 자살을 시도합니다. 자기희생이란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상현의 논리대로라면 자신 역시 ‘사탄에 대한 순교’를 하는 셈이지요. 괴물을 미워하다가 괴물을 닮아버리는 사람들처럼 상현은 그렇게 파멸에 이르게 길을 내딛은 거죠.


그러다 살아났고, 사람의 피를 마셔야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아픔을 감싸줘야 하는 성직자면서 사람들 피를 빨아먹어야 하는 흡혈귀가 된 상현, 자기 쾌락을 갈구하면서도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 ‘심리 싸움’을 치릅니다. 모든 사람이 겪는 이 심리를 성직자와 흡혈귀라는 상징으로 드러내는 거죠.


많은 사람이 그렇듯 성직자는 흡혈귀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상현은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적당히 타협하고 욕망들을 충족시켜 갑니다. ‘좋은 일’하고자 실험을 한 거고, 수혈 받은 피는 자기가 고른 게 아니며, 피를 마시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거죠. 좋은 뜻으로 하였으나 뜻과 다르게 어긋나며 더욱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 세상사, 그 앞에서 어찌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그려내는 거죠.


이미 전작들에서 원치 않게 굴러가는 세상사와 헤어 나올 수 없는 삶의 굴레를 박감독은 보여주었죠. 이 영화에서 다시 복수와 금기, 종교와 구원 같이 사람 안에 있는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욕망들과 부조리한 세상사를 건드리죠. 그러면서 사람이란 무엇이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묻습니다. 상현처럼 ‘좋은 일’들이 정말 좋은 일들인지 자기가 믿고 있는 게 언제나 옳은 건지 뒤집어서 생각해보자고 말을 걸지요.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사랑, 끝내 지옥으로 같이 가게 되다


그렇다면 세상에 구원은 없는 걸까요? 현대에 이르러 ‘사랑이라는 종교’가 떴지요. 비루한 삶을 구원해주는 건 사랑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지요. 재미없고 지루한 일상을 단번에 저 지극한 행복으로 건져 올려주는 사랑, 이 환타지를 영화는 다룹니다. 사랑이 정말 구원해줄 수 있는 걸까요?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았던 태주에게는 한밤에 맨발로 거리를 뛸 때가 살아있는 순간이고 낮 시간이 자는 순간입니다. 몽유병에 시달리는 시간이 행복한 순간이라는 태주에게 나타난 상현은 자기 신발을 신겨주지요. 그리고 속삭입니다. “나랑 같이 가요. 내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게 해줄게요.” 사랑으로 태주를 구원하겠다는 거죠.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얘기는 십계명에 나올 정도로 오래된 금기지요. 그것을 상현이 깨뜨립니다. 신부는 직업일 뿐이라며. 금기는 한번 넘기 어렵지 다음부터는 아주 쉽습니다. 친구의 아내와 나누는 섹스는 어느새 친구에 대한 살해 계획으로 발전하게 되죠. 자신의 허벅지를 때리고 송곳으로 찌르면서 욕망을 억누르던 상현과 태주는 ‘지옥의 악마’를 죽여 지옥을 벗어나고자 하는 거죠.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어보라고 하는 이브처럼 태주는 상현에게 금기를 건드리는 시험입니다. 이 말은 태주가 팜프파탈이라는 게 아니라 사랑 자체가 시험이라는 겁니다. 서로를 구원해주는 사랑으로 이르지 못 하고 그들의 사랑은 끝내 서로를 갉아먹다가 상대를 죽여도 후회되고 살려도 후회하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태주와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상현은 ‘지옥에서 만나요’라며 눈시울을 붉히게 되죠.


노신부(박인환)가 눈이 멀었다면 상현은 ‘태주를 구원하겠다는 욕심’에 영혼의 눈이 먼 거지요. 사랑이란 시험에 무너진 겁니다. EV 바이러스에서 시작한 상현의 시험은 태주라는 ‘이브’에서 끝맺게 되는 거죠. 사랑이란 신발을 신어봤자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지 못하지요. 신발은 남녀 간 사랑이 구원일 수 없다며 쓸쓸하게 남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성기 노출을 함으로써 결핍된 존재임을 직시, 그제야 구원의 가능성이 자기 안에서 움튼다


자신을 붕대감은 성자라고 우러르는 인간들에게 상현은 사람들이 기대를 저버릴 수 있게 ‘가장 더러운 곳’을 일부러 보입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을 해달라며 머리를 조아리자 거무튀튀한 남근 덩어리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되풀이 되었던 한계며, 절대로 ‘남’에게 기대서는 구원을 이루지 못 한다는 진실이죠.


영화에서 EV 바이러스는 백인과 아시아인 남성에게만 걸린다고 하죠. 이 바이러스는 왜 백인과 아시아인 남성의 목숨을 앗아갈까요? 그들은 자기들만을 ‘주체’라고 믿고 있으며 자기들만이 옳다고 여기죠. 그렇기에 ‘이브’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성은 남성의 오만을 잡아먹으니까요. EV 바이러스 항체 ‘여성성’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죽게 되는 거죠. 양성성이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구원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성기는 인간이 결핍된 존재라는 걸 보여주죠. 이것은 타고날 때부터 어쩔 수 없는 인류의 한계죠. 세련되게 옷으로 가리고 있지만 누구나 결핍으로서 성기를 갖고 있죠. 영화는 그 결핍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에게 숭앙받으면서도 성욕에 몸서리를 치던 상현이 자기 결핍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면서 스스로도 직시하는 순간이죠. 그제야 구원의 가능성이 자기 안에서 움트게 되고 비로소 영화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거죠.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해골을 들이밀기에 푸르른 하늘과 빠알간 장미들만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봄날에 하얀 구름만이 세상의 진리가 아니고 성기와 털만이 삶의 진실도 아니지요. 꽃과 똥 모두에 ‘삶의 신비’가 담겨 있으며 꽃과 똥이 설명하지 못하는 빈틈에 사람에 대한 답이 숨어있겠죠. 그것을 생각해보자고 영화는 얘기합니다.


지옥에서 구원을 받으려다 생지옥을 만들고 끝내 지옥으로 가는 이야기. 우리네 삶과 무척 닮아있지는 않은지요.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지옥에서 벗어나겠다며 생지옥을 만들어내는 우리들이지요.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곁에서 머무르나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현, 왜 사는지 모른 채 그냥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은유지요. 이 절망을 직시해야 희망을 볼 수 있는 거겠죠.


동물과 신 사이에 있는 사람, 박쥐가 되어 날 시간이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불편함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영화 도중에 나갈 정도로 끔찍하고 섬뜩한 장면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물론, 이 오싹한 이야기가 세상의 진실은 아니지요. 영화 <박쥐>역시 수많은 세상의 진실 가운데 일부일 뿐이죠. 새와 짐승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박쥐처럼 동물과 신 사이에 있다는 사람, 이곳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저곳을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색감, 구도와 배치, 음향과 특수효과까지 영상미가 정말 뛰어납니다. 그 가운데 미장센과 여러 가지 상징성을 지닌 도구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죠. 영화에서 상현과 태주의 욕망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화면을 넓게 잡아 거울을 나오게 합니다. 그 때 비치는 상현의 얼굴과 태주의 얼굴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욕망에 범벅이 된 얼굴이죠. 더구나 태주의 거울에는 얼굴이 비치는 부분에 금이 가기까지 했죠.


영화 앞쪽에 상현이 고해성사를 하는 간호사의 마음을 다독이지 못하고 오히려 뿔나게 할 때, 화면 맨 왼쪽을 보면 십자가에 뱀이 감겨있습니다. 무력한 상현이 욕망에 감기는 상징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다 태주를 안아든 장면이 뒤에 나오는데, 태주의 손 모양도 그렇고 얼굴 위치도 그렇고 십자가를 감은 뱀과 빼다 박았습니다.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배치를 했을지 생각해보며, 미학이나 화면 배치가 정말 남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박찬욱은 <올드보이> 주인공 오대수를 오이디푸스에서 따왔듯이 이번에도 서쪽을 힐끔거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죠.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을 빌려서 ‘테레즈’는 ‘태주’, ‘라캥부인’은 ‘라여사’, ‘카미유’는 ‘강우’로 바꿔서 쓰고 있지요. 10년을 기획하고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서구 세계관을 비틀면서 뒤집지요.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 ♬ <가시나무>의 노랫말처럼 여러 욕망들이 사람 안에 있지요. 욕망을 부추기는 자극에 동물은 본능대로 반응을 하지만 사람은 선택을 합니다. 성직자와 흡혈귀가 한바탕 싸울 때, 누구를 도울지는 자신의 몫이고, 빛과 그림자가 뒤엉켜 있을 때, 어떤 빛깔을 내며 세상을 살아갈지는 자신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마더 테레사로 살 수도 있고 히틀러로 살 수도 있는 거죠. 박쥐가 되어 날 시간입니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 ?
    이창엽 2009.05.12 08:54
    글쓴이가 '꺄르르'라면 청년회의 이인 형제가 맞을텐데...
    그런가요?
  • ?
    김문음 2009.05.12 09:09
    ?? 전 몰라요. 이웃사랑교회 홈피에 전 목사님이 옮긴 걸(오마이뉴스?)
    우연히 퍼온 건데요?..
    이뤌 수가.. ^_^*~
  • ?
    성냥이 2009.05.12 15:02
    ㅋㅋ 꺄기자 울교회 청년 맞고요. 가끔 포털 메인을 장식하기도 하는.... 비정규직 기자랍니다. ;;;; ㅋ
  • ?
    김문음 2009.05.12 18:04
    헐. 울 교회 청년 대단한 걸요? 와아..
    이런 우연이라니. 참 신기하네요. 와아. ^^
  • ?
    배정은 2009.05.12 22:31
    새길에 재주꾼 청년들 많아요~~~
  • ?
    황민령 2009.05.12 23:59
    알고 퍼다 놓으신 줄 알았는데...
    꺄기자 글이길래 읽지도 않았어요..ㅋㅋ
  • ?
    성냥이 2009.05.13 00:10
    민령형제.. ㅋㅋㅋ 꺄기자 기사 중에서 종이파는 할머니 기사.. 진짜 찡허다니까~
  • ?
    성냥이 2009.05.13 00:10
    그리고 쟈철 화장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기사랑;;;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기사~ ^^ 강추.. 오블/스페셜인에 들어가서 감상!!
  • ?
    황민령 2009.05.13 00:13
    종이 파시는 할머니 기사는 마음 무겁게 읽었습니다. 냥자매!( 새길 청년 황민령 형제)
  • ?
    김문음 2009.05.13 00:35
    난 전~혀 몰랐다는 ^_^;; (꺄기자가 누군지 지금도 얼굴도 뭣도 모른다는.. ^^)/
    위의 글 몇몇 단어(미성년자 읽기 불가일 듯한..)들 때문에 올려도 되나, 한참 망설였다는.. ^_^;;/
    그러나, 우리 모두 자기 외의 누구를 함부로 구원합네 하기 어려운(사랑의 이름으로 망하게?^^) 모순적 존재라는?.. 내용이 너무 좋아 용기 내어 올렸다는. ^^/
    그런데 우리 교회 안, 청년회원의 글일 줄이야.. @.@ 나 원.. ^^
  • ?
    이인 2009.05.17 22:36
    오늘 김문음선생님 만나뵙고 글을 올리셨다는 얘기를 듣고 이제야 들어와 읽게 되네요 ^^;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0 토론 [re] 비겁하지 말자. (펌) 1 김문음 2009.11.19 3406
49 토론 루저 2 배정은 2009.11.19 3475
48 토론 [Re] 이정모 형제님의 글에 답하여 3 이창엽 2009.08.13 3507
47 토론 서로 이해할 때, 화가 자비심으로 바뀐다. 2 이정모 2009.08.10 2892
46 토론 분노하는 소수보다 ‘현실 꿰뚫는’ 수백만의 눈빛을 6 배정은 2009.08.06 3043
45 토론 우리의 믿는 바, 믿는 방식이 서로 다름은 좋은 것임 7 file 이정모 2009.08.02 3392
44 토론 새길교회를 떠나며(2) 1 여경모 2009.05.31 3229
43 토론 [용산참사]신부 능욕하는 용역깡패 경찰 1 최덕효 2009.05.31 9313
42 토론 새길교회를 떠나며(1) 여경모 2009.05.30 3331
41 토론 길희성 선생님의 글을 읽고. 여경모 2009.05.22 2728
40 토론 돈키호테를 읽고 여경모 2009.05.21 2744
39 토론 악당이 되자. 4 여경모 2009.05.21 2622
38 토론 “야훼와 모세. 이 두 분 중 어느 분이 더 높을까~요?” 여경모 2009.05.21 2589
37 토론 조봉기 선생님께.. 답글이예여~ 3 임병인 2009.05.20 2503
36 토론 전쟁 책임 고백서 (펌) 3 김문음 2009.05.20 2116
35 토론 우리 교육에 관한 김규항 글 2편 (펌) 2 김문음 2009.05.16 2439
34 토론 기독교신앙은 논리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 1 임병인 2009.05.14 2379
33 토론 미친 선장 에이하브 여경모 2009.05.13 3838
» 토론 누구냐 넌? 영화 &lt;박쥐&gt;가 묻는다 (펌) 11 김문음 2009.05.11 2465
31 토론 구약을 한 페이지로 요약한다면............. 2 여경모 2009.05.09 201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