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조회 수 5999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노자, 도오리, 갱숙이, 그리고 나.



나는 육남매중의 다섯째다. 내 위로 형님 누나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집 책장은 온갖 책들로 가득했다. 우리 집은 독서광이 많았다. 특히 할머니가 그랬다.  좀 웃기는 이야긴데 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노자 도덕경을 읽었다. 만화책이라면 몰라도 그 나이에 노자라니..... 뭘 알고 읽었을 리가 만무하다. 어쨌거나 노루가 풀을 뜯고 폭포수가 흐르는 깊은 산에서 수염이 허연 도사님이 인생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삼국지, 사기열전, 노자, 장자, 회남자, 논어, 시경, 중용, 대학......... 중국의 역사와 사상서에 관한 책은 꽤나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는 고우영의 만화 초한지를 무아지경으로 읽었다. 초딩때 노자를 읽던 사람이 이 나이에 와서 만화책에 코를 박고 킬킬 거리다니 이거 완전히 거꾸로 된 거 아닌가? 어쨌든 내가 좋다는데 누가 말릴 사람도 없고 고우영은 다시 봐도 재미있다.   


얼마전에 도올 김용옥이 텔레비전에서 노자 도덕경 강론을 했다. 그는 강의 도중에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구약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올의 책을 몇권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내가 뭘 읽었는지 어리벙벙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이 못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는 워낙 좌충우돌이었다. 독자우롱. 돈내서 책을 산 것이 후회되었다. 그럴 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지 고우영 만화를 읽었어야 했다.


노자는 기원전 5세기 경의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로 치면 이사야, 예레미야가 이 땅에 와 있을 때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듯이, 지구촌의 여기서 일어 나는 일은 저기서도 일어 난다. 내가 보기에는 도올이 그토록 사랑하는 노자와 구약 선지자들의 말씀이 같던데 구약 폐기론.....? 


도올이 항상 엉터리라는 말은 아니다. 6년전 헌법 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위헌 결정 때 그가 쓴 글은 당대의 명문이다. 법의 최고 전문가를 자처하는 대법관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많은 사람이 그 글로 인해 감동 먹었는데 나도 그 중의 하나다. 행복했다. 글은 그렇게 혼신의 힘으로 써야 한다. 서푼짜리 지식으로 세상을 우습게 알고 말과 글을 대충 퍼질러 놓는 먹물은 개자식들이다.

 

"주여, 무릎꿇고 비옵나니

이 개자식들을 기둥에 묶어 놓고,

약한 불로 서서히 구워 죽이소서,

아멘"

 

도올이 개자식이라는 말은 아니다. 글을 그토록 잘 쓸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정작 자기 일생의 전공인 노자에 대해 그토록 후지게 썼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노자를 웃긴 남자

                     이경숙.


도올의 TV 고전강의가 시작되었을 때 한두 횐가 보고는 뭐 신경을 꺼 버렸다. 익히 도올에 대해 잘 아는데다가 더 이상 시간을 빼앗길 가치를 못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도올이 얼마나 인기가 좋았던지 재방송되고 있는 것이다.  전에 같았으면 보지도 않았겠지만 시간이 널럴해진 까닭에 그걸 들여다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차라리 안봤으면 속이 편할텐데 막상 보고 나니 그냥 넘어 갈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노는 김에 염불하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남는 시간에 도올의 노자 강의나 바로 잡아 줄까 생각하게 되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잘못하면 한 사람 잡는 짓이 되겠더라는 말이지, 노자 강의를 한답시고 풀어 놓은 도올의 썰을 보면 강의가 황당한 것도 황당한 거지만 곳곳에 무식이 철철 넘치는 소리를 흘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르니까 넘어 가지 아는 사람이 볼 때는 배꼽을 잡을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더라는 것이다.

모른척하고 넘어 가? 바로 잡아 줘? 고민 같지도 않은 고민을 잠시 하다가 그예 쓰고 만 것이 바로 이 글이다. 도올의 강의를 가지고 얘기 하는데 심각하거나 진지할 필요는 전혀 없고, 학술적인 격식까지나 갖출 이유도 없어 보인다. 아마도 내가 평생에 가장 쓰기 쉬운 글이 아니겠나 싶다. 깊이 생각하고 다듬고 할 것도 없어.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를 도라고 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 지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도올이 인류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칭송해 마지 않는 왕필이부터 일본 조선을 비롯한 노자해석의 대가라는 핫바지들이 내 놓은 해석이다. 도덕경의 첫글은 불과 6자지만 도덕경 5천 글자를 관통하는 대단히 중요한 문장이다. 이 문장을 바로 알지 못하면 노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결코 알 수가 없다. 생각함 해 바바. 사람이 책을 쓸 때 가장 고심하는 것이 첫 줄 아니겠어.

도들 도라고 말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라니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그럼 도를 도가 아니라고 말해야 도가 되는거야? 문장 성립이 안돼. 저런 유의 헛소리는 도올 아저씨 전공이지, 노자 할아방은 절대 저 따위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명확하고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질만한 말씀만 하신 분이다. 그리고 저런 엉터리 같은 말이 적힌 책은 사상서로 대접 받을 이유가 없는 거야. 그리고 만약에 저 번역이 맞다면 노자가 엉터리가 되는 것이야.


道可道 非常道,

도라고 했지만 깨달음이라해도 좋고, 섭리라고 해도 좋고 법칙이라고 해도 좋다. 그냥 이름붙이기를 도라고 했으니 이름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지는 않은가 고민하지 말라는 설명이다. 도라는 것은 그저 이름일 뿐이고 그 이름은 꼭 도가 아니어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뒤에 가보면 알겠지만 도올은 이런 의미를 모른채 도덕경을 해석한답시고 도를 길이라는 뜻으로 받아 들이는 촌극을 벌이게 된다. 도올은 아예 그것을 영역으로 WAY 라 한다. 이게 개그가 아니면 뭐가 개그겠냐. 道를 조선말로 번역하면 도가 되고 영어로 번역하면 TAO가 된다. 이것을 길이라거나 WAY 로 번역하는 인간은 노자가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다. 이런 수준으로 노자를 팔면서 책장사 강의 장사를 하고 앉았으니 어찌 나한테 욕을 안먹겠냐.


다음 구절, 名可名 非常名은 도가도 비상도를 부연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이름으로 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 이름이어야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사과나 능금이나 애플이나 다 같은 것인데 이름 가지고 따질 것 있느냐는 말이다.

도라는 이름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는 문장을 도라는 것 자체의 본질에 대한 설명으로 오역해 버리면 책 내용을 완전히 뒤바꾸게 된다. 도덕경이라는 심오하고 고매한 철학서를 도올이 들어 서서 오역과 악역으로 황칠을 해 놓은 까닭에 누군가의 말처럼 초등학교 도덕교과서보다 못한 황당무계 잡서가 돼버린 거다. 왜 그러냐? 첫번 째 한 줄을 잘못 읽으니까 그 다음 구절이 자다가 봉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돼 버리기 때문이다. 앞 줄과 뒷 줄이 내용이나 논리적으로 전혀 연결이 안된다. 노자가 문장 실력이 없어서 그랬을까. 도덕경은 전체 5천 글자 한 글자도 잘못 끼어들 여지가 없이 물흐르는 듯한 일관성을 갖춘 경탄할만한 글이다. 그러나 도올의 글을 보면 유치원생이 쓴 일기장처럼 점심먹은 내용 쓰고, 그 다음에 아침에 늦잠 잔 얘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자기 전에 텔레비전 본거 쓰다가 오후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써놓는 애들 일기장 같다. 도덕경은 그런 책이 아니다......  


도를 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항상 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름으로 이름을 삼을 수는 있겠지만

항상 그 이름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by 갱숙)

              

노자를 웃긴 남자. 이 책이 꽤 많이 팔렸다. 갱숙이 한문 잘하고 그녀의 말대로 그 사람들은 핫바지 맞다. 거기까지만 맞고 갱숙이가 결론으로 내놓은 해석도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거든.


전라도 목포에서 어물전을 하는 모자지간의 대화다. 아들이 어머니를 부른다.

“어메”.

“우째?”

“그~ 머시다냐 아랫마을 꽃분네 말요”.

“야그 혀봐”

“스무개짜리 거시기 해 부럿소?”

“백개로 해 부렀다”.


어머니는 어제 열마리에 만원하는 말린 고등어를 꽃분네에게 스무개 만원으로 넘겨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들은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늘 스무개가 아니라 백개에 만원으로 넘겨 줬다는 것이다. 아들이 놀랄 밖에


“흐~미, 허벌라게 거시기허네요. 우째 그리싼디요?”

“장사라고 늘 그런게 아녀”. 商可商 非常商,


어머니로서는 장사는 뒷전이고 꽃분이를 며느리로 들일 욕심이었다. 속을 모르는 아들이 또 묻는다.


“그라도 그렇지, 백개는 너무 거시기 하잖소?”

“고등어라고 다 같은 고등어냐?” 名可名 非常名

손해이긴해도 수입 고등어니까 너무 걱정 말라는 이야기다. 


이걸 한문으로 번역하면

商可商 非常商, 名可名 非常名

이 된다.


어물전에서 말린 생선파는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인데 실제 상황을 모르고 한문으로만 읽으면 굉장히 심오하게 들린다. 저게 무슨 소린지 한문의 천재가 와도 알쏭달쏭 해진다. ‘핫바지’들이 노자 도덕경의 첫 줄에 대해 이천년이 넘도록 정론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면 노자 도덕경이 고작 어물전 수준이란 말이냐?”

그런 것은 아니다. 경전은 하나의 낱말에 두가지 이상의 뜻을 함의하는 중의어(bilateral)을 자주 쓴다. 대화의 당사자인 아들도 모르는 어머니의 속마음이 있지만 한꺼번에 둘 다 이해하려고 욕심부려서는 아무 것도 안된다. 어떤 상황에서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것이 수수께끼처럼 난해한 고전의 실마리를 푸는 ABC다. 

(다음 호에 계속)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69 토론 이형호 님,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1 이창엽 2010.08.03 5812
68 토론 At the situation when Religious & Nonreligious, and Theist & Atheist will be on the same boat... file 이형호 2010.08.02 4067
67 토론 The New Horizon of Religion and Faith, from Awakening Campaign for the Intrinsicalness of God 이형호 2010.07.10 4186
66 토론 기독교의 새로운 디자인은 하나님 본연에 대한 각성운동( Awakening Campaign for the Intrinsicalness of God )" 으로부터 5 이형호 2010.06.17 4766
65 토론 우리의 이야기, 신의 이야기 4 이정모 2010.06.14 4255
64 토론 신의 개념과 종교적 믿음: 이정모의 (biased) 생각 3 이정모 2010.06.06 4951
63 토론 투표 꼭 하셔요! 1 file 바람소리 2010.06.01 4926
62 토론 탈종교시대에서, 오늘날 인간, 인류에게 종교가 왜 존재할 수 있는가... 이형호 2010.05.29 4644
61 토론 홈 페이지 1 고운용 2010.04.26 5659
» 토론 노자, 도오리, 갱숙이, 그리고 나. 1 여경모 2010.03.23 5999
59 토론 초심 여경모 2010.03.14 5011
58 토론 고백 여경모 2010.03.14 4971
57 토론 새 홈페이지에 대한 의견^^ 3 조성희 2010.03.07 6025
56 토론 욕쟁이 예수와 친해지기. 여경모 2010.02.20 6521
55 토론 사제를 몰아 낸다. 여경모 2010.02.20 4395
54 토론 예수의 천국론 5 여경모 2010.02.20 7215
53 토론 복음의 원형을 찾아서 (1). 여경모 2010.02.10 4746
52 토론 책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중에서 (펌) 김문음 2010.01.08 3056
51 토론 소모임, 그리고 서로사귐에 대하여~!! 8 김종구 2009.12.29 3176
50 토론 [re] 비겁하지 말자. (펌) 1 김문음 2009.11.19 339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