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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연애하는 마음으로 '새길 공동체'와 함께 새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첫번째로 참여한 여름 수련회에서 한 청년은 우리 새길공동체가 '가난하거나 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교회'는 아니라고  비판했고, 어머니와 함께와서 예배를 볼 수 없음을 안타까와

 했습니다. 

이점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의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보며 평안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에, 혼자서라도 이곳 새길 공동체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선은 제가 살아야하기 때문이지요.

 

언젠가 록펠러가 미국 사회에 기증한 금액과 내용을 보면서, 한국에는 언제쯤 이런 기업가가

나올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새길 이야기에 주니어 록펠러가 기부하여

세운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 이야기가 실려 있네요. 제 친구가 이 글을 찾아서 저에게 전해 준 것을 

제가 다시 우리 공동체 모두와 함께 읽고 싶어 올립니다.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우리가 꿈꾸는 새길 공동체의 미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끝까지 꼼꼼이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뉴욕 리버사이드교회 이야기

2010/01/01 00:28

정경일 (유니온 신학교 박사과정)



어느 햇살 맑은 일요일 아침, 한 컬럼비아대 학생이 브로드웨이를 따라 걷고 있습니다. 마침, 허드슨 강변 언덕 위 "'록펠러교회'의 높다랗고, 회색의, 값비싼 탑의 커다란 종"이 성스러운 시간 오전 열한 시를 알려줍니다. 하지만, 종소리를 들은 청년은 그 교회 대신 "작은 벽돌 건물"의 코퍼스 크리스티 성당으로 들어가 미사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곳에서 영세를 받고 카톨릭 신자가 되지요. 그가 바로 이십 세기 최고의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입니다. 그리고 한때 사회주의 청년조직에 참여하기도 했던 머튼이 부정적 어감으로 묘사한 '록펠러교회'는 미국의 진보적 그리스도교를 대표해온 리버사이드교회입니다. 만약 머튼이 거북할 정도의 웅장한 외형 대신 그 안에서 불지펴지고 있던 예언자적 정신을 보고 리버사이드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 왔다면 오늘날 개신교 영성의 풍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록펠러 주니어와 포스딕: 기이한 만남?

리버사이드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출발점으로 돌아가 당대의 갑부였던 존 D. 록펠러 주니어와 자유주의자였던 해리 에머슨 포스딕 목사의 만남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만남이 리버사이드교회의 정신과 실천의 틀을 주조했으니까요. 두 사람이 만나게 된 1920년대는 19세기 말부터 시작한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충돌이 여전히 교회적,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자유주의적 신학을 지지하고 있던 포스딕은 소속 장로교단으로부터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받아들이든지 시무하던 퍼스트 프레스비테리안 교회의 목사직을 사임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그는 교회 목사직을 사임함으로써 자기 신념을 지켰지요. 마침, 미국 교회의 얼키고 설킨 교파주의와 전근대적 신학에 신물이 나 있던 록펠러 주니어는 새시대에 맞는 교회일치 운동을 일으키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연히 반-교파주의, 반-근본주의로 이름을 얻은 포스딕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두 사람의 만남은 제갈량을 얻기 위한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연상시킵니다. 록펠러 주니어가 포스딕에게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파크 애버뉴 뱁티스트 교회로 와 달라고 하자, 포스딕은 침례를 받아야만 정교인 자격을 주는 교회에는 가지 않겠다며 거절합니다. 록펠러 주니어는 세례제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교회 지도자들의 합의를 끌어낸 후 포스딕을 다시 찾아가지만, 이번엔 부유한 동네에서 부자들만을 위해 목회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합니다. 록펠러 주니어가 그럼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새로운 교회를 지어주겠다고 하지만, 포스딕은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이유를 묻는 록펠러 주니어에게 포스딕이 말합니다. "당신은 너무 부자니까요. 난 이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이의 목사로 알려지고 싶지 않습니다." 록펠러 주니어가 말합니다. "솔직해서 좋군요. 하지만 그거 압니까? 내 부 때문에 당신을 비판할 사람들보다 당신의 신학 때문에 나를 비판할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거?" 이 말에 포스딕은 마음을 바꿔 리버사이드교회의 초대 목사가 되기로 결정합니다.

록펠러 주니어는 냉혹한 자본가로 비난 받았던 아버지 록펠러와 달리 자본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며 '복지 자본주의'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가 자선사업을 통해 미국의 교육, 문화, 종교 등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를 최선의 체제로 신봉한 점에서 다른 자본가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본주의에 다소 비판적이었던 포스딕과 자주 언쟁을 벌인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록펠러 주니어는 최대후원자로서의 위치를 이용하여 포스딕과 리버사이드교회의 정치적 선택을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1930년 10월 5일, 리버사이드교회의 입당예배에 일부러 참석하지 않은 것도 교회에 어떠한 형태의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리버사이드교회에 그가 1959년 죽기 직전까지 계속 기부한 총액은 당시 돈으로 천문학적 액수인 약 3천 2백만불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록펠러 주니어와 포스딕이 정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이였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스딕이 1926년에 [대담한 종교]라는 책을 냈을 때, 당대의 진보적 그리스도교를 사상적으로 대표하고 있던 라인홀드 니버는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포스딕의 종교는 중산계급의 것일 뿐, 그다지 '대담하지' 않다. 그는 현대 문명의 근본적 비도덕성, 비도덕적 민족주의, 권력에의 욕망, 그리고 탐욕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다." 니버가 맞다면, 록펠러 주니어와 포스딕의 만남이 꼭 '기이한'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은 자본의 사회적 책임성을 실현하는 정도에 대한 기대만 달랐을 뿐,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지 않은 데서는 차이가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전근대주의적, 근본주의적 종교를 거부한 데서는 입장이 일치했고요. 따라서, 리버사이드교회는 록펠러 주니어와 포스딕이 각각 대표하고 있던 ‘좋은 자본주의’와 ‘좋은 종교’의 자유주의적 이상이 만난 자리에서 생겨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머튼이 리버사이드교회를 '록펠러교회,' 즉 부자들의 교회로 본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리버사이더들은 고학력, 고수입의 중산층 내지 중상층에 속하니까요. 지난 2000년에 실시한 교회 내 설문조사 응답자의 약 5분이 1이 박사학위 소지자였고, 교인들의 평균소득은 5만불에서 7만 5천불 사이였습니다. 소득 2만불 아래를 빈곤층으로 분류하는 미국에서 리버사이드교회를 중산층 교회로 보는 건 사실에 어긋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리버사이더들이 미국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들마다 큰 목소리로 사회정의를 외치며 참여해온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가진 자들의 교회이면서도 적당히 윤리적인 척 해온 역사일까요, 아니면 태생적 한계 속에서도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해 온 역사일까요?

사회정의를 위한 헌신의 역사

리버사이드교회 남쪽으로 붙어 있는 8층 높이의 거대한 부속 건물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름 첫 글자들을 딴 MLK 빌딩입니다. 리버사이더들이 킹 목사의 삶과 뜻을 얼마나 깊이 기리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한 표지이지요. 지금도 리버사이더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역사적 순간은, 1967년 4월 4일, 킹 목사가 리버사이드교회에서 "베트남을 넘어: 침묵을 깨야 할 때"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베트남 전쟁의 악을 폭로했던 날입니다. 당시 니버조차 민주주의를 위한 '개입'의 필요성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던 상황에서, 킹 목사의 메시지는 충격적이다 못해 위험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킹 목사가 옳았음을 증명했지요. 이후 리버사이드교회는 민권운동에서 반전평화운동으로 사회참여의 지평을 넓힙니다.

1977년부터 십여 년 동안 교회를 이끈 윌리엄 슬로언 코핀 목사는 리버사이드교회의 사회적 실천을 국제적 차원으로 넓히는 데 기여했습니다. 1980년대 초, 리버사이더들은 비핵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1982년 6월 12일에는 유엔과 함께 비핵화 촉구 시위를 주도적으로 조직했고, 이 날, 사백여 명의 교인들이 리버사이드교회 깃발을 들고 거리행진을 벌였습니다. 한국 민주화운동과의 인연도 깊습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을 때는, 설교자로 초청된 문동환 목사가 학살자들과 미국의 연루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리버사이더들의 사회정의를 위한 실천은 세기가 바뀐 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4일, 킹 목사의 반전연설 42주년을 기념해 월스트리트에서 열린 “은행이 아닌 민중을 지원하라!”는 구호를 내 건 대규모 시위에도 교회 차원에서 대거 참여했지요.

한편, 인종차별, 성차별, 전쟁을 반대하는 노력에 비해 가난 해결을 위한 노력은 다소 부족했다는 안팎의 비판도 있습니다. 물론 1995년 제임스 포브 목사가 가난의 문제에 교회적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 것은 당시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직접 리버사이드교회를 방문해 정책토론에 참여했을 정도로 반향이 컸습니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중고품 가게, 미용사 교육, 이민자 무료 영어교육 등도 꾸준히 실시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활동들이 자선활동을 넘어 근본적 가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실천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못합니다. 물론, 일개 교회에 너무 많은 걸 요구해서는 안 되겠지만, 포브 목사가 제시했던 가난 극복의 전국적, 국제적 비전을 고려하면, 그것을 구체화하는 교회적 노력이 조금 미진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리버사이드교회는 미국 사회의 양심을 대표하는 예언자적 교회로 존재해왔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교회 이름을 건 선언들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헌신해온 리버사이더들 하나하나의 삶입니다. 어느 날, 옆에 앉은 개일이 자기 아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이라크에 자원병으로 가 있었거든요. 마침 그날은 반전 시위에 리버사이더들이 참여하기로 한 날이라 그의 마음이 불편하겠다 싶어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자 마자, 그는 반전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로 갈아 입고는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엄마들은 전쟁을 반대해" 라고 말하면서요. 자기 자식만 생각하지 않는 그런 어머니들이 있기에 리버사이드교회는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예언자적 교회일 겁니다.

흑과 백을 넘어 무지개 공동체로

매월 첫 주일에는 전통적 양식의 성만찬을 나눕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건 성만찬 빵이 흰 빵과 갈색 빵 두 가지로 섞여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밝은 피부색을 지닌 이들만의 몸이 아니라 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이들의 몸이기도 하다는 걸 상징하는 걸까요? 하지만 아직 백인 중심의 교회였던 초기의 리버사이드교회는 인종차별은 아니었지만 인종적 편견으로부터까지는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포스딕 조차 인종차별을 비도덕적이고 반그리스도교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문명사적으로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이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또한 흑인들을 우스갯거리로 삼는 농담을 설교와 연설 중에 즐겨 사용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2대 로버트 제임스 맥크라켄 목사가 흑인 민권운동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흑인들이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지요. 인종차별에 대한 리버사이드교회의 당시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69년 5월 4일, 급진적 흑인 민권운동가 제임스 포먼이 갑자기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가, 백인들의 교회는 흑인들의 희생에 대해 배상하라는 취지의 [블랙 매니페스토]를 낭독합니다. 리버사이드교회 외에도 여러 백인교회와 단체들이 그 대상이 되었지요. 이때, 포먼 그룹의 ‘난입’을 비난하기에 급급했던 대부분의 교회들과 달리, 리버사이드교회는 그 선언의 취지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배상의 차원에서 특별히 조성한 약 30만불의 기금으로 "사회정의를 위한 리버사이드 재단"을 구성했습니다.

사실, 포먼이 1960년대의 리버사이드교회를 다른 백인교회들과 동일시한 것은 조금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이미 그 두 해 전인 1967년에 흑인 목사인 칼 플레미스터가 리버사이드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한 해 전인 1968년에는, "권위에 대해 따져보자!"라는 모토의 교회민주화를 통해 흑인들을 교회 지도력 구조에 더 많이 포함시켰으니까요. 이런 흑-백 조화의 노력은 포브 목사 이후에는 제도적 차원을 넘어 의례와 신앙생활로까지 확장됩니다. 이 이야기는 뒤에 다시 다루겠습니다. 아무튼, 제도, 예전, 생활 모두에서 흑인 교인들의 비중과 역할은 더 이상 ‘배려된 주변’이 아니라 실제적 중심이 되었습니다. 인적 비율만 보더라도 2007년 현재 리버사이더들의 60 내지 70퍼센트가 흑인들입니다.

리버사이드교회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동성애자 교인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일찌감치 1978년에 동성애자들의 모임인 마라나타회를 교회의 공식적 조직으로 인정한 덕분이지요. 물론 내부적 갈등도 있었습니다. 1985년, 부목사였던 채닝 필립스가 동성애는 죄라는 취지의 설교를 합니다. 이때, 유니온 신학교 학생이던 휘트 허친슨이 설교 직후 일어나 필립스 목사의 입장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교인들은 송영 때 단상 한 쪽에 모일 것을 제안합니다. 이에 필립스 목사의 동료인 조앤 카바노 목사를 비롯 일부 교인들이 동조하지요. 이 사건 후 공동체는 동성애에 대한 심층토론을 전개했고, 마침내 네 주 후인 6월 2일, "동성애자들에 대한 개방, 포용, 인정의 선언" 문서를 공식적으로 발표합니다.

매년 6월 마지막 일요일에 맨해튼에서 "게이 프라이드 행진"이 개최됩니다. 이날 아침 리버사이더들은 마라나타회 주관으로 동성애자들과 함께 공동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예배 후 오후에는 교회 차원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에 참여하지요. 이년 전, 마라나타 아침식사 때 제가 앉은 테이블에서 저 빼고는 모두 동성애자들이었습니다. 성적소수자로서 차별 받아 온 아픔이 있는 이들이라 그런지, 그 테이블에서 '성적소수자'인 제게 유난히 친절하게 대해주었지요. 그날 설교자였던 이벳 플런더 감독의 물음이 기억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그 몸은 여성의 몸이기도 하고, 흑인의 몸이기도 하고, 장애인의 몸이기도 하고, 또한 동성애자의 몸이기도 합니다. 잔치의 주인인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를 초대했는데 어떻게 우리가 초대받은 자와 초대받지 못한 자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 잔치를 기념하는 성만찬에 이제는 흰 빵, 갈색 빵 만이 아니라 ‘무지개떡’을 사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뜨겁고, 따뜻하고, 자유로운 영성

자유주의 교회들의 영적 온도는 차갑습니다. 가슴이 아닌 머리에서 나오는 지적 신앙 때문이지요. 하지만 자유주의 교회의 하나인 리버사이드교회의 영적 온도는 가끔 차가울 때도 있지만, 대체로 뜨겁거나 따뜻합니다. 역동적 흑인영성이 지적이고 정적인 자유주의적 영성과 잘 어울려 있기 때문입니다.

수요일 저녁의 "은혜의 자리"는 "사회적 실천을 위한 영성"을 추구하는 포브 목사가 1998년에 시작한 예배입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드리는 이 예배는 흑인영성 특유의 감성적 찬양, 춤, 간증, 치유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흑인들이지만 뜨거운 영성을 추구하는 백인들도 꽤 참여합니다. 어려서 너무 뜨거운 영성에 데인 상처가 있는 제게는 조금 어색하고 불편한 예배지만, 개인주의로 파편화된 뉴요커들이 서로의 고통과 행복에 "지저스!" 혹은 "할렐루야!"로 화답하며 영적 가족을 이루는 걸 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게다가 이 예배의 "덜 위압적인 스타일"은 가난한 사람들도 위화감 없이 참석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교회의 문을 넓히는 데도 기여하고 있고요.

한편, 뜨겁진 않지만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따뜻한 온도의 영성도 다양하게 추구되고 있습니다. 매 주일 이른 아침, 크라이스트 채플에서의 “아침명상”이 그 중 하나입니다. 침묵, 기도, 성만찬, 성서 읽기, 설교, 치유의 독립적 예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명상에는 아늑하고 친밀한 신앙생활을 원하는 이들이 주로 참여합니다. 이 명상의 가장 아름다운 순서 중 하나는 아픈 이에게 모두 손을 얹고 조용히 기도하는 치유의례입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 자매, 형제의 아픔을 덜고 생기를 더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한 몸 됨을 영적, 신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미로(labyrinth)명상, 향심기도 등 조용하고 깊은 영성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리버사이드교회의 영성을 온도의 은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자유로움의 영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리버사이드교회에서 운영하는 [전인건강센터]는 불교 선 수행과 요가 등 동양 종교들의 전통적 수행법은 물론, 심지어 뉴에이지 영성 테크닉까지도 수용하고 있습니다. 센터가 직접 후원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제목만 소개하면 "마인드풀니스 명상과 수련회," "소리 치유," "기공," "하타 요가" 등입니다. 자유롭게 열린 정신 없이는 엄두도 못 낼 일들이지요.

자유로운 영성의 바람은 공동체의 예배 속으로도 붑니다. 2001년 9/11 참사 바로 다음 주일, 리버사이더들은 두 무슬림 지도자와 랍비 한 명, 그리고 불교 승려 한 명을 초청하여 "미국을 치유하는" 예배를 함께 드렸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무슬림이 "알라후 아크바르(하느님은 가장 위대하십니다)"로 시작하는 아잔을 맑고 깊은 목소리로 낭송함으로써 예배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한 초청 설교자가 그리스도인들만이 구원받는다고 설교한 것 때문에 한 주 동안 교회가 들썩거렸습니다. 결국, 그 다음 주일, 담임목사 브래드 브랙스턴은 그 초청 설교자의 신학적 입장이 리버사이드교회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라는 걸 발표하는 특별 순서를 가졌습니다. 배타주의에 대해서만은 배타적인 리버사이더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리버사이드교회 서쪽 정문 위에는 과학자, 철학자, 성인들의 조각상들이 있습니다. 제도적 그리스도교와 불편한 관계였던 찰스 다윈, 앨버트 아인쉬타인, 랠프 왈도 에머슨 같은 이들의 조각상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공자, 붓다, 무함마드의 조각상을 보는 것은 짜릿한 일입니다. 그것도 80여년 전에 세워진 교회 건물에서 말이지요. 리버사이드교회의 [사명 선언문]은 교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성격을 "초교파(interdenominational)," "다인종(interracial)," "다국적(international)" 세 형용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성의 바람이 공동체의 더 깊은 곳으로 불어, 언젠가 "종교간(interfaith)"이라는 형용사를 추가할 날도 오게 될까요?

리버사이더 되기

리버사이드교회에 출석한지 반 년 정도 되었을 때, 정식 등록교인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부 때문에 바쁘긴 했지만 공동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교인등록 절차가 간단할 거라는 예상도 했고요. 그런데, 제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습니다. 교인등록 신청 후 며칠 뒤, 토요일 오전 아홉 시부터 네 시까지 있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설마 시간을 다 채워 끝내랴 싶었는데, 교회 소개, 친교, 토론 등을 포함한 일정은 정확히 네 시에 끝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열 다섯 명의 새 교우들과 기존교우 십여 명이 종일토록 함께 한 오리엔테이션 '첫날' 일정을 마쳤습니다.

"다양성의 천사들"을 팀 이름으로 정한 우리는 그 후 두 달 간 교회의 각종 모임과 집회에 초대받았고, 특히 구체적 활동 한 가지를 정해 '완수'해야 하는 임무도 받았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생필품 및 식품을 마련해 전달하는 활동을 했지요. 공부 때문에 모임에 몇 번 빠지면서, 이러다 '탈락'되는 거 아닌가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동료 '천사들'과 오리엔테이션 자원봉사자 교우들이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두 달 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며 새교우 교육을 마친 우리는 주일 예배 때 공동체에 소개 되었고, 예배 후 환영 파티에서 '레드 카펫'위에 일렬로 서서 교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새교우 오리엔테이션의 경험은 공동체가 기대하는 평신도상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수동적으로 지도자들을 따라가지 말고, 공동체의 능동적 주체가 되라는 것이지요.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리버사이드교회 안에는 평신도 중심의 다양한 위원회들이 존재합니다. 매주 예배 후에는 1층 교제 공간에서 각종 위원회들이 테이블을 놓고 교인들에게 자신들의 활동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며 참여를 촉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바이블 스터디' 등과 같은 신앙과 신학교육도 평신도들이 직접 기획하고 주도합니다.

리버사이드교회 새 목사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은 코핀 목사는 자신의 약점으로 교회행정 경험의 부재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청빙위원회 사람들이 말합니다. "걱정 마세요. 목사님은 행정을 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처럼 교회 운영의 모든 영역에서 교인들의 자주적 참여와 지도력이 실현되고 있다 보니, 담임목사는 공동체의 사상적, 영적 방향을 정립하는 데 전력할 수 있습니다. 포브 목사가 리버사이드교회 목사의 역할을 "동기부여자" 또는 "제안자"로 정의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물론 그 내용을 식별하고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교인들의 권리이자 의무이지만요.

도전: '완전'으로 돌아갈 용기

리버사이드 교회는 성인(聖人)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규모도 크고 목소리도 다양하다 보니 내부적 갈등이 생길 때도 많습니다. 심지어 법적 소송으로까지 가는 경우도 가끔 있고요. 1995년에 포브 목사의 비-자유주의적 목회 스타일에 반발한 이들이 큰 분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최근엔 새로 부임한 브랙스턴 목사의 60만불 연봉에 대한 일부 교인들의 비판이 경제위기 현실과 맞물려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리버사이드교회의 '일치'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차이들'을 수용하는 다양성의 문화에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가 '지적,' '영적,' '윤리적' 차원 모두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하기 때문에, 다른 성향의 리버사이더들이 한 지붕 아래 더불어 지낼 수 있고요.

하지만 다양성의 문화가 아직 충분히 수용하고 있지 못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경제적 차이입니다. 한 리버사이더로서 공동체를 바라 볼 때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고 있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종교사회학자인 로렌스 하미야는 "주일에 입을 옷 (Sunday Clothes)"이 없어 교회에 오지 못했다는 한 가난한 흑인 여성과의 대화를 소개하며 따끔하게 한 마디 합니다. "리버사이드교회의 부와 그 구성원들의 고학력, 고수입은 가난한 이들이 예배에 참석하는 걸 두려워하게 하는 계급장벽을 높여왔습니다." 물론 의도적 배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차이들'은 나서서 수용하면서도 경제적 차이만은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현실은 그만큼 공동체의 품이 좁다는 걸 말해줍니다. 당연히 뼈아픈 자기비판도 많았지요. 포브 목사가 말합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위해 일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결코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영속적 가난에 처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스러져 가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을 이념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분입니다. 우리는 그 이념을 자양분으로 살아왔습니다. 이 체제의 수혜자로 살아왔습니다.

네, 이유는 명확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니, 너무 명확해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는 리버사이드교회만의 과제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교회가 직면하고 해결해가야 할 과제입니다. 고난의 땅에서 탄생한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을 뉴욕의 풍요로운 환경에서 연구하고 있는 제 자신의 실존적 과제이기도 하고요. 리버사이드교회에서의 경험은 저를 근원적 물음과 마주하게 합니다. "나는 가난해질 수 있을까? 나는 정말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 수 있을까? 완전해질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복음서 19:26)"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니 고개 숙여 기도할 수밖에요. 그 답을 당장 살아낼 용기까지는 아니어도 그 물음과 함께 살아갈 용기를 달라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여행이 시작한 곳에서 실현되었던 '완전'으로 돌아갈 용기를 달라고.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그대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십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십시오 (마태복음서, 19:23).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도행전 2:44-46).



참고한 책들과 웹사이트

Dorrien, Gary. The Making of American Liberal Theology: Idealism, Realism, and Modernity, 1900-1950.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3.
Hudnut-Beumler, James. The Riverside Church in the City of New York: A Brief History of its Founding, Leadership and Finances. New York, N.Y.: Riverside Church, 1990.
Paris, Peter J., et alia. The History of the Riverside Church in the City of New York. New York, N.Y.: New York University Press, 2004.
The Riverside Church in the City of New York http://www.theriversidechurchny.org

새길이야기, 2009년 여름호



  • ?
    안인숙 2013.01.25 22:56

    잘 읽었습니다, 정경일 형제께서 소개한 리버사이드교회가 그리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새길공동체도 벤치마킹할 부분도 있을 것 같구요......

  • ?
    조성희 2013.01.26 00:17

    저도 이 글 올려 놓고 다시 읽으니, 또 많은 것을 배웁니다.

     

    지금 이 순간 저에게 크게 다가오는 것은

    1. 뜨겁고, 따뜻하고, 자유로운 영성을 추구하며, 다양성의 문화를 수용하되, 

        배타주의에 대해서만은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리버사이드 교인들의 태도와  

    2. 목회자의 역할을  '동기부여자' 또는   '제안자' 로서 정의한 점

    3. '바이블 스터디' 등과 같은 신앙과 신학교육도 평신도들이 직접 기획하고 주도하는 점,

    4.  등록 교인이 되기까지 일정 시간 교육을 하고,  평신도로서 그 역할을 명확히 기대하고

         알게 한다는 점 

    5.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지 못함에 대해

        뼈 아픈 자기 비판을 할 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

     

    등입니다.  

    이 글이 흐릿해 잠시 앞길이 잘 안 보였던 제게  맑고 투명한 지혜를 줍니다.

     

    감사합니다.^^

       

  • ?
    김태영 2013.01.26 14:24

    록펠러 주니어는 리버사이드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삼고초려 했지만 찾아온 고든 코스비 목사의 설립지원요청은 거절했다지요. 오히려 그래서

    지금의 세이비어교회가 작고 낮은 자를 섬기며 그들 가운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Gordon Cosby목사님의 church of the saviour에 관한 정경일형제님의 글도 한번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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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2013.01.26 15:30

    잘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많은것들을 생각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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