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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는 인류 역사에 핀 ‘아름다운 두 송이 꽃’
오강남 교수 초청강연 <종교, 심층에서 만나다>

5월 씨알사상 월례모임이 지난 5월 6일(일) 오후 3시 중구 장충동 한살림연합 교육장에서 오강남 교수(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비교종교학)의 “종교, 심층에서 만나다.”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진행됐다.

   
▲ 이날 강연은 박재순 박사(씨알사상연구소장)의 사회로 진행됐고 불교신도와 수녀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인들이 모였다.ⓒ에큐메니안

오강남 교수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마스터(Mcmaster)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로 있다. 그동안 마이아미 대학교, 알버타 대학교, 마니토바 대학교, UBC, 서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에서 객원 교수로 강의했고 미국 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도덕경』 (1995)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1996) 『장자』 (1999) 『예수는 없다』 (2001) 『예수가 외면한 그 한 가지 질문』 『세계종교 둘러보기』 (2003)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2006)가 있고, 역서로는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1993)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 (1997) 『귀향』 (2001) 『예언자』 (2003) 『예수의 기도』 (2004) 『예수 하버드에 오다』 (2004) 등이 있다. 제 17회 코리아 타음즈 한국현대문학 영문번역상(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원주의는 맹인 다섯이 각기 만진 코끼리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

오강남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생명과 평화인데 그 중에 평화를, 그 중에도 종교 간의 평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한스 큉이 ‘종교 간의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의 평화가 없다. 종교 간의 평화가 없으면 세계평화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종교 간의 대화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그는 아래와 같이 기독교의 이웃종교에 대한 대표적인 세 가지 태도를 배타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로 정리했다.

 

배타주의(exclusivism) : ‘내종교만 진리다.’라는 태도. 이런 태도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기독교의 90%이상이 기독교 배타주의를 진리로 생각한다. 원인은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론적 영향을 끼친 사람은 칼 바르트이다.


포용주의(포괄주의, inclusivism) : 다른 종교에도 계시와 구원이 있다는 태도. 그러나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진리를 찾아서 내 종교로 와야 한다.’는 태도.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태도. 칼 바르의 ‘익명의 그리스도론’, ‘다른 종교의 신은 하나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는 결국 배타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원주의(pluralism) : 장님 다섯 명이 코끼리를 만져 본 후 ‘코를 만져 구렁이, 다리를 만져 기둥, 귀를 만져 이파리, 꼬리를 만져 새끼줄’이라는 각각의 체험을 ‘내가 만져본 한에 있어서는’라는 태도로 코끼리에 대해 좀 더 완전에 가까운 상을 만들어보자는 태도가 다원주의. 한국에서 다원주의는 매카시즘처럼 터부시 되어왔다.

오강남 교수는 다원주의를 mutuality(공통점을 찾는 태도)와 acceptance(서로의 다름을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로 구분하는 폴 니터(Paul Knitter, 유니온 신학대교수)의 견해를 소개했다. 그는 그 중에도 acceptance 모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견해를 덧붙였다.

오강남 교수는 탬플대학교의 레오나르드 스위들러(Leonard Swidler)교수의 “대화냐, 죽음이냐”는 제목의 글을 소개하면서 종교 간의 대화를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죽지 않기 위해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다.”라고 말하며 종교 간의 대화를 소개했다.

 

표층을 뚫고 심층에서 만나자

   
▲ ⓒ에큐메니안

그는 “대화를 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어느 종교든 거기에는 표층적인 면과 심층적인 면이 있다. 표층에서는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하려면 심층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비콕스 교수가 『종교의 미래』 (2010, 김창락 역)에서 소개한 일본 선사들과는 소통됨을 느꼈지만 TV설교자의 신앙과는 이질감을 느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때로는 같은 종교 안에서 표층과 심층의 차이가 다른 종교와의 차이보다 큰 경우가 있다.”고도 말했다.

 

'참나'는 하나님

오강남 교수는 심층종교의 경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심층에 들어간 사람은 ‘지금의 내가 진짜 내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데 지금의 나는 제나(제 것으로 자신을 말한다. 한자말 自我에 해당하는 말)요 몸나(몸뚱이로서의 나)일뿐 진짜 나는 참나(참된 본래 모습의 나. 몸나의 반대말) 얼나(얼, 즉 정신으로서의 나)이다. 참나, 얼나를 찾는 것이 심층종교의 핵심이고 참나는 하나님이고 절대자라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적 용어로 이 개념을 풀이를 하는데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내 속의 하나님이 진짜 나다.―하나님과 나는 하나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심층종교의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심층종교로 가기위한 전제, 문자주의로부터의 해방

오강남 교수에 따르면 심층종교의 중요한 특징은 문자주의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그는 “문자주의에 사로잡히면 될 것도 안 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그 폐해를 강조했다. 바울도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후3:6)”라고 말했듯이 문자주의는 근본주의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표층종교에는 문자주의가 존재하지만 특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문자주의가 가장 심한 종교이고 이러한 문자주의가 곧 근본주의가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근본주의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문자를 거부하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말해주려는 더 깊은 뜻을 알아내는 것.’이라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표월지’를 예로 들었다. 그는 “문자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심층에 들어가는 길이다. 그렇게 해야만 종교 간의 대화가 가능하다.”며 문자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심층종교로 가는 전제임을 밝혔다.
 
‘불교와 기독교, 함께 일하고, 생각하고, 변화하고, 심화해야’

오강남 교수는 ‘기독교와 불교를 포함한 종교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시대적 질문에 답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불교와 기독교는 다원주의적 시각을 함양하여 서로가 서로를 경쟁적이거나 위협적 관계로 볼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보완적 관계’로 볼 것, 그리고 이런 근본적 시각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생각하는’ 협력관계,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교와 기독교는 서로 대화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 시대의 정신적 모험을 감행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기독교와 불교의 심층에서의 협력을 주장했다.

또 그는 그러기 위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자기 종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다른 종교로 넘어가봄과 자기 자신의 종교로 되돌아옴’이라는 변증법적 과정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진정으로 성숙한 종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은 기독교 불교가 함께 일하고(사회적 문제 공동행동) 함께 생각하고(신학적 영역 안에서의 대화) 함께 변화하고(깨달음, 깨침 고정관념의 깨짐) 함께 심화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화의 관계에서만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함께 일한다.’는 것은 “오늘처럼 복잡한 사회에서는 어느 한 종교가 사회의 모든 문제에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이 시대의 도전에 응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불교도와 기독교도는 상대 종교를 대할 때 모든 것을 진위, 선악, 시비, 우열 등과 같이 단순한 이분법으로 판가름하던 옛 패러다임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고 ‘함께 변화한다.’는 것은 “불교의 ‘깨달음’이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고 했을 때의 ‘회개’ 곧 ‘메타노이아’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회개로 번역된 그리스어 원문의 명사형은 ‘메타노이아’로서 어원적으로 볼 때 이것은 한국말의 회개나 영어의 repentance같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정도의 뜻 보다 훨씬 더 깊은 뜻 곧 가장 깊은 내면에서부터 이루어지는 ‘의식의 변화’ 자체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가 이렇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의식의 궁극적 변화’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야 하고, 나아가 가장 깊은 차원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불교와 기독교가 이런 의식의 변화를 각각의 종교 생활에 공통의 목표로 삼고, 가능한 한 많은 불교인과 기독교인 사이에서 이런 의식의 변화가 가능해지도록 하는 여러 가지 구체적 방법을 ‘함께 생각’하고 토의하는 진지한 대화에 임한다면, 이런 대화야말로 두 종교에게 더없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에큐메니안

 

심층종교로 들어가는 수단으로서의 자기성찰

그리고 그는 심층종교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자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전제돼야하고 참나, 참하나님 참신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방법인 ‘자기를 들여다보기’라고 설명했다. 즉 기도와 명상이 모든 종교에서 심연으로 가기위한 가장 중요한 수행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직접 지도하는 종교 수행자는 아니지만 수행자를 많이 본 사람이다. 에베레스트에 올라갔다온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어봐서 내가 안다. 적어도 잠옷, 슬리퍼를 신고 에베레스트에 올라가는 사람에게 ‘그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는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안내자로서의 입장임을 설명했다.

 

기독교와 불교는 인류 역사에 핀 ‘아름다운 두 송이 꽃’

마지막으로 오강남 교수는 한국불교와 한국기독교의 대화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이제 한국 불교가 한국 기독교 모두에게 독백과 고립적 발전의 시대는 이미 종언을 고한 셈이다.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은 예수와 붓다는 ‘한 형제’요 기독교와 불교는 인류 역사에 핀 ‘아름다운 두 송이 꽃’이라고 하였다.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만나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상호 만남과 영향이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이 두 종교는 좀 더 방법론적으로 확실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만나 대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원대한 목적에서 서로 만나 나누게 되는 허심탄회한 대화는 자신의 ‘상호 혁신과 변화’뿐만 아니라 한스 큉의 말처럼 한국 사회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도, 한걸음 나아가 세계 시민으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불가결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다음 주(05월20일) 오랜 만에 말씀 증거를 하여 주실 '오강남형제님'에 대한 기사를 기독교 정론지인 "에큐메니안"으로부터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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