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내와 함께 장안의 화제작인 영화 '부러진 화살'을 봤습니다. '부러진 화살'은 대학 입시 시험에 출제된 수학 문제 오류를 지적한 교수가 부당하게 해고되면서 소송을 했으나 패소하자 담당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비록 영화의 속성상 허구를 전제로 구성되었다고 하지만 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정부의 불신, 사법부의 불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 사법부는 흔히 말하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의 부정부패 정석을 보여 주는 권력기관 그 자체입니다.

가장 공정하고 평등해야 하는 사법부이지만 법은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있는 게 우리 국민의 법 감정입니다. 한 번이라도 재판을 받아 보고 검찰청에 불러가 조사를 받아 본 사람이라면 느끼는 감정입니다. 또한, 판검사의 옷을 벗은 변호사, 특히나 부장 판검사의 옷을 벗은 변호사의 전관예우라는 사법부 관행이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사법부는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판결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판사 자신에게 불리한 답변 제출은 기각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김 교수와 박 변호사는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의견에 근거 있는 반박을 계속해서 보여 줌으로써 사법부의 판결을 직격타로 꼬집습니다. 관객인 일반인들도 이해되는 사건을 왜 그들만이 이해를 못 하는 건지 우리의 사법부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사법부는 재판 과정에서 법은 공평한 판결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수사의 방향, 은폐 조작된 결과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듯합니다. 아무리 진실을 말하고 증거를 제출해도 판사가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을 하면 허사입니다. 판사의 오만과 비인간적 언행은 약자인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사법부의 무능력함을 비꼬는 듯한 내용에 카타르시스와 통쾌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았다는 공감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돈 없고, 권력 없는 국민으로서는 씁쓸함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상영된 이후 국민의 사법부 불신으로 이어지자 국민과 소통을 하는 의미로 사법부의 해명에도 상당수의 국민은 '부러진 화살'의 내용이 사실인 것을 전제로 잘못된 사법 시스템에 대하여 국민적 질타를 보내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불의한 재판으로 말미암은 희생자들의 절규를 뉴스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사법부의 불의한 법의 집행으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느끼고 있습니다.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조 비리, 강자와 권력 앞에서 약자를 얼마나 보호했으며 공정 사회를 위한 정의를 얼마나 추구했는지 우리는 경험적 사실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이 앞서고 있습니다.

국민은 부러진 화살이란 영화를 통하여 일그러진 사법부에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화 속의 허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약자인 우리 국민은 법원이나 검찰청에 가면 누구나 아들을 판검사 시키고 싶고, 병원에 가면 의사 시키고 싶고, 경찰에 가면 경찰, 형사를 시키고 싶은 감정이 앞서는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너무나도 많이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법부를 비롯하여 모든 국가기관의 권력은 그 집단 자체의 존재를 위해 부여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대명제를 알아야 합니다. 국민의 믿음과 존경이 없다면 죽은 국가권력기관입니다. 헌법이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강자를 위해 권력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면 죽은 법입니다.

이쯤에서 필자는 '부러진 화살'이 우리 사회의 불의한 권력기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한국교회 안에 있는 모순된 신앙의 모습 즉 '부러진 복음'의 잔영이 오버랩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교회는 국가기관처럼 권력화된 집단으로 변질하여 버렸습니다. 복음을 실현하기 위한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브랜드 목사를 위한 권력기관을 유지하기 위한 집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복음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법부가 권력을 위하여, 정치적 강자, 경제적 강자를 위하여 법을 왜곡 해석, 판결하듯이 목사들이 성경을 왜곡 해석, 설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엿장수 마음대로 판결하는 것이 우리 국민이 느끼는 사법부의 시선일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역시 엿장수 마음으로 복음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한국교회를 향한 국민의 감정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 교회로 성장하기 위한 믿음의 왜곡, 신앙의 타협을 우리 국민이 신도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전도의 문은 막히고 안티들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면 복음은 만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계급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단지 기능적 은사의 차이로 섬김의 대상이 되어야지 일방적 섬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신학대학을 나와 목사 안수를 받고 설교하고 목회를 한다는 이유로 성도들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은 복음적이지 못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복음의 정신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한국교회 안에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고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의 행위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부러진 복음의 사례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소수의 브랜드 목사들이 교회 권력을 독점하고, 총회, 연합 기관, 이익 기관을 독점하여 복음을 실종시키고 부러진 복음의 주인공이 되어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한국교회 역시 국민과, 신도와 소통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률이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쉽게 해석을 하고 법을 가까이할 수 있다면 법은 판검사 변호사의 전유물이 아니듯이 성경 역시 그렇습니다. 신도가 성경을 쉽게 이해하고 신학을 공부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이단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성경과 신학은 목사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설교권 역시 그렇습니다. 물론 시스템화한 성경 교육, 신학 교육이 필요함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를 빌미로 배타적 독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한국교회가 사법부처럼 불신의 화살을 맞는 것은 부러진 복음이 너무나도 많이 온존하고 있기에 교회의 정체성이 상실된 데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온전한 복음의 원형을 회복하여야 하는데 중론을 모아야 합니다. 이제 그만 목회 성공하려 하고, 교회 건물 짓지 말고 작은 교회 단위로 국민 마음속에 들어가 복음으로 국민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야 합니다.

부러진 화살이 국민적 공감을 하고 있다면 부러진 복음 역시 국민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으로 교회 안에서만이라도 바른 복음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성경이 바르게 해석되고, 이 시대의 치유를 담당하는 소중한 소스가 되어야 합니다. 권위주의적, 독재적, 계급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서는 부러진 화살의 모습을 회복하기는 힘이 듭니다. 따라서 목사와 장로가 권사, 집사, 모두 귀하게 서로 섬기는 모습이 전제되어야 가능합니다.

 

최종운/ 치유 생태 연구가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우리 삶의 전 방위적인 적용 및 생태계 문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는 무비용, 저비용 건강법과 질병 치유법을 연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는 건강하고 복음적 개혁 교회가 되도록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평범한 성도입니다.